행운과 불운은 한 끗 차이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플수도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날씨 예보를 살펴보지 않고 무대뽀로 출근길에 나섰다.

비를 맞아도 싸다.

버스 한 대를 놓치고서야 놓친 버스도 잠실역에 간다는 것을 알았고(이미 늦었다.)

다행히 다음 버스를 타고 잠실대교를 건너기 시작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머리를 굴린다.

잠실역 내부로 들어가면(뛰어가면 되겠지) 분명

문을 연 편의점이 있을 것이고

거기서 또 비닐 우산을 사면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산 비닐 우산이 너무도 많아서 학교 사무실에 놓고 공용으로 쓰라했던 것이 2주전이다만.)

다행히 비가 쏟아지지는 않아서 별로 맞지 않고 잠실역 지하로 들어가는데 까지는 성공했다. 행운이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 넓고 넓은 잠실역 지하상가에

문을 연 편의점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큰 백화점이 있는 지역이라 작은 소상공인 편의점은 지레 겁을 먹고 들어오지 않은 것일까?

커피와 빵을 파는 곳들만 문을 열었고

편의점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우산이 없는데 어쩌나. 낭패이다.

방한용으로 비상 추위에 대비하여 사무실에 가져다 놓아야지 하고 들고온 경량 패딩이 있다.

할 수 없이 머리에 그것을 두르고 냅다 뛰어본다.

늙으니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남들이 뭐라하건 안들린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만 달관한 척.

빠른 걸음으로 셔틀버스 주차장으로 가본다.

비가 잠시 잦아든 소강상태를 유지하는 동안에 셔틀버스에 탑승하는데 성공한다.

학교까지 오는 동안 비는 제법 세차게 내렸는데

도착 오분 전부터 잦아들더니 내릴 때가 되니

날이 개고 비가 그쳤다. 행운이다.


아침은 유부초밥 도시락을 사무실에서

점심은 바질 넣은 치즈 호밀빵을 강사 휴게실에서 오물오물 먹었다.

아침 먹으면서는 티를 한잔 탔고

점심 먹으면서는 오랜만에 커피 믹스를 탔는데

둘다 엄청 뜨거워서 혓바닥을 델 뻔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혓바닥과 입술이 죄척화되어 있나보다.

그나마 무언가를 먹는 동안

사무실에도 강사 휴게실에도 나밖에 없었으니

아이코 하면서 티와 커피를 뿜을 뻔한 볼상 사나운 장면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행운이다.

오늘의 프로야구 드래프트에 나선 <불꽃야구> 선수들은 총 5명이다.

그들 모두가 선발되면 기적인데 그런 기적은 나오지 않았고(기적이 쉬우면 기적이겠냐?)

달랑 1명의 선수만 이름이 불리워서

내심 마음이 안 되었다.

된 사람에게는 축하

안 된 사람에게는 위로를 보낸다만

지금 어떤 위로도 들릴 리 만무일 것이다.

축하를 보내야 하는 선수도 이제 더 이상 우리 팀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그 포지션 걱정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된 것이 어디냐?

그 한명마저도 안 되었으면 어쩔뻔 했냐?

프로의 세계가 그리 냉엄한 것이고

운동선수에게 4년의 시간이란 엄청 긴 시간이다.

병역문제가 더해지니 더더욱 그렇다.

오늘 이름이 불리지 않은 선수들도

그냥 조금 불운했다 생각하고 훌훌 털어버리기를 바래본다.

오늘 뽑혀서 가거나 육성이 되어서 가거나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면 된다.

행운과 불운은 한 끗 차이이고(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마음 아플 수도 있다만)

다음에는 내가 행운을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이제 비교과 프로그램 강의를 준비해볼까나...

특강 강사님을 모셨는데 이 빗속에 잘 도착하시기를 기원한다.

( 퇴근길에 최대 행운을 만났다. 집으로 오는 버스가 있는 곳에 셔틀이 섰고 버스가 이어서 왔다. 지난주보다 45분 일찍 귀가. 고양이가 엄청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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