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기계는 믿을수 있는 녀석인가?

못믿을 사람도 많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제 저녁

Science Story Lab 비교과 프로그램은

데이터 리터러시 관련 특강이었다.

다음 주 활동이었으나 비예보로 천체 관측과 순서를 급변경하였다.

특강 강사님은 잘 아는 후배 수학교사이고 S대 관련 과목 출강강사님이고

그의 강의 실력은 몇 번 보았으며 인정하는 바이다.

갑자기 바뀐 일정을 쿨하게 받아주었다.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계빼고는.(...은 노땅들만 쓴다하여 안쓰는데 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일단 PC 버전의 ZOOM을 깔아야하는데

그 강의실 수업이 비교과프로그램 30분 전에 마친다.

세팅 시간이 쫓기는 것은 가장 싫어하는 요소인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른 저녁을 학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나 하렸는데

학식도 4주차에 들어가 다섯 번 이상 먹어보니

이미 패턴이 읽히고 그와 비례해서 맛이 엄청 떨어졌다.

이것이 데이터 사이언스의 힘이다.

분석을 기반으로 예측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힘.

저녁을 제대로 못먹고 오는 학생들을 위해서

햇대추와 청귤도 가져다 놓고

행정직원에게 선물받은 유과도 가져다 놓고

내 비상용 사탕과 간식도 가져다 놓았지만

내가 제일 많이 먹은 듯 하다.

10명의 학생이 와야는데 5명밖에 안온 것은 비때문일까? 주제때문일까?

그것을 알 데이터는 없다.

다음 주에 물어보기 전에는 말이다.


PC 버전의 ZOOM 설치는 했는데 카메라가 없다. 괜찮다. 굳이 내 얼굴이 안 보여도 된다.

빔으로 크게 화면에 쏴서 온라인 강의를 들으려고 계획했었는데

생각보다 교실이 커서 음성이 자꾸 울린다.

학생들은 비상용으로 휴대폰으로 접속해두었기는 하니

중간에 이상이 있어도 별일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뿔싸. 믿었던 강사님의 컴퓨터가 문제이다.

헤비한 프로그램을 깔았는지 잠깐 돌다가 멈추고

또 잠깐 돌다가 멈춘다.

이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이다.

내쪽만 걱정했지 강사님쪽은 전혀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전문가였으니 말이다.

아마 엄청 당황하셨을 것이고 5분 정도를 왔다갔다했으니 진땀 좀 흘렸을게다.

기계란 이런 것이다.

비전문가인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이유로 방금 전까지도 잘 되다가 안된다.

이유는 분명 있다. 내가 모를 뿐.

마음은 타들어가고 어려움이 몰려오는 그 순간.

기계에 대한 배신감이 극도로 차오른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 기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간신히 분노를 참아본다.

상도 주고 벌도 주는 셈이다.

그래서 마냥 미워만 하고 관계를 끊을수만은 없다.


비대면 수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 중 한가지이다.

대면이 되면 기계가 안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차선책이 있다만

비대면인 경우는 기계의 협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수강생들의 반응과 그들과의 티키타카도 느낄 수 없다는 큰 단점이 있다.

힘들어도 대면 수업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나는 기계치인가?

기계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않는) 것인가?

아마도 둘다일 것이다.

기계의 배신을 항상 염두에 넣고 오늘도 차선책을 준비한다.

점심에는 비즈니스 미팅이 하나 있고(교육여행사 컨설팅이다.)

지난 주에 이어서 과학실무사님들 연수 특강이 있다.

아직은 기운이 1도 나지 않는 흐린 아침인데

다행히 비는 안오거나 조금 오는 것 같고

해가 반짝 난다면 아마도 에너지가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그렇담 나는 태양 에너지를 받아 충전하는 기계인가?

어제는 기계에 대한 배신감이 컸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사람의 배신감이 더욱 큰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맞다.

믿는 사람에게 발등을 크게 찍혀본 나로서는

기계보다 사람을 더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나를 일으켜세우는 것은 사람의 칭찬이다.

어제 받은 메일 중에 <강의가 너무 재밌고 신선하다.>는 평이 있었다.

한줄로 힘듬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만

강사비가 너무 조금인 것은 아쉽다.

물론 이런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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