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유지한다는 일

그리 쉽지는 않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일주일 중 제일 기다리는 일은

월요일 저녁 8시에 유튜브로 방영되는

<불꽃야구> 본방을 시청하는 일이다.

시간 5분전부터 틀어놓고 쿵쾅쿵쾅 대기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월요일 저녁이 좋았다.

지금까지 힘들었지만 계속 이겨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제 드디어 첫번째 지는 날이다.

그것도 아주 아주 아쉽게 여러 번의 찬스를 못 살리고 더없이 허무하게 말이다.

물론 아주 더운 날 한창 나이가 아닌 선수들이

오랜 시간 시합을 한 어려움이 있었다만

시합을 하면서 어떻게 이기기만 하겠냐만은

연승으로 인한 모종의 안도감이 선수들에게 생기기도 했고 여러 원인으로 인해 집중력과 체력이 조금 떨어진 것도 맞다.

사람이 그렇다.

느슨해지지 않는 것이 그렇게 안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는 여러번 언급한 것처럼

내가 응원하는 팀의 지는 경기를 보지 못한다.

가 나기보다는 마음이 찢어진다.

아슬아슬하게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경기도

혈압 상승과 심한 가슴 뛰는 현상으로 보기 힘들다.

내가 좋아하는 경기는

응원하는 팀의 일방적인 압승이다.

그렇게 신날수가 없다.

지난 주 드래프트에 실패한 젊은 선수들의 영상을 보고도 마음이 갈래갈래 찢어졌었다.

우는 친구도 강건한 친구도 부모의 마음에 빙의하여

그리도 안타까웠다.

이미 지난주부터 대강 지나가듯이 스쳐가듯이 보는 소극적인 시청 자세를 취하였다만

어제는 도저히 연장 승부에 끌려가서 결국 지는

그 순간(직관이어서 결과를이미 알고 있다.)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극단의 회피기제의 발동이다.

일단 시작하는 것은 본다.

좋아요도 눌러주고

조회수에도 반영하는 의무를 다하고

세탁 세제 PPL 도 기꺼이 구입해주는 골수팬의 역할을 다한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는다.

아니다. 어제는 눈을 일부러 질끈 감을 필요가 없었다.

몸이 힘들어서 저절로 눈이 감긴 것이다.

아니다. 마음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평온한 일상이 되어야만

내가 좋아라하는 콘텐츠도 눈에 들어오고

응원도 하고 욕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는 경기마저 소화 가능한 열성팬 여러분들은 누가뭐래도 행복한 분들이다.


강의가 없는 오늘 아침.

일찍 눈이 떠졌고(일찍 잤으니 그럴만하다.)

습관적으로 SNS 와 카톡을 살펴보고 나니

어젯밤 충격적인 첫 패배를 본 사람들의 아픔이 사방에 묻어나는데

나는 다음회차 예고를 보고서 그 마음을 깨끗이 정리했다.

우리의 늙은 감독님께서 레전드 선수들을 혼내고 계셨다.

정신차리라고.

우리는 이겨야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낮고 작은 성량의 목소리셨지만 단호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마치 친정아버지의 호통이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 내가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저렇게 호통을 치셨었다.

엄마의 잔소리도 그립지만 아버지의 호통이 그리운 시기였나보다.

아버지대신 노감독님의 호통이 들린다.

선수들에게 하는 말이 나에게 하는 말로

내용이 바뀌어져 들린다.

정신차리라고 말이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호통을 쳐주는 사람이 남아있다는 일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제는 아무도 없다. 늙은 내 눈치를 볼 뿐이다.

그리고 눈물 찔끔날만큼의 그런 호통들이 나의 일상을 지켜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 할 일은 없지만 추석이고

이사 이슈로 인한 마음의 불편함이 극대치이고

내 사랑 <불꽃야구>는 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다음 경기가 있고(그것이 좋은 일이다. 그래야 잊어버리는데 도움이 되고 반등의 계기가 된다.)

나에게는 다음 강의가 있고(이제 필살기가 다 떨어져가서 더더욱 강의 준비에 전념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내 하루도 이어지고 진행될 것인데(휴식이 목표이다. 내일 달려야하므로.)

정신을 차려야지 늘어져서는 안된다.

일상을 묵묵하게 담담하게 유지하는 일.

나에게도 <불꽃야구>를 만드는 그들에게도 꼭 필요한 마음이다.

그리고 노감독님의 호통 한 마디가

나도 그들도 다시 일으켜세워줄 것을 믿는다.

이 아침 최대한 담담하게(그래도 속은 쓰리다.)

어제 방송을 돌려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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