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을 때 하자.
9월 1일자로 초빙교수 임용이 되어서 어떻게 보면 정규직이 된 것 같지만
실상 초빙교수는 1년 계약직이고
3년까지는 재임용이 가능하다고 계약서에 적혀있지만
잘 할 때 이야기이다.
따라서 본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아르바이트는 계속 된다.
할 수 있을 때 하자가 나의 모토이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될지 알 수 없다.
조금 힘들어도 <이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혹은 <중요한 일인데 아무도 지원하지 않으니 나라도 땜빵으로 해주니 좋은 거 아니냐?>
이런 마인드로 아르바이트에 임한다.
물론 젊고 의욕넘친 사람들의 일자리인 것이 뻔한 것을 탐내거나 뺏으려는 시도는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땜빵과 서포트 전문가이다.
9월의 아르바이트를 정리해본다.
늘상 하던 서울시교육청 전시관 구축 TF 활동은 11월 보고회까지는 아마도 계속 될 것이다.
현재 운영 프로그램 수정 작업과 전시장 구성 아이디어 안내문을 만들고 있고
추석 연휴에 초안은 모두 완성될 예정이다.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대로 공간이 구축되는 경험은
이미 몇 번 해보았지만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 생산적인 일들이 지속가능하게 진행된다면 그 기쁨은 더욱 더 크다.
내가 공간리모델링이나 전시장 구축같은 일에
관심의 끈을 놓치않는 이유이다.
물론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내 집 꾸미기이다만.
내 집이 생기기를 소망한다.
다음으로 관찰대회 심사위원을 했었고
(오랜만에 열심히 하는 어린 학생들을 보아 기분이 좋아졌었다. 내 도파민 분출의 한 꼭지이다.)
과학실무사님 대상의 연수를 두 번 했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실무사님의 역량 제고 못지않게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응원을 보내는 것이 연수 목표였다.)
그리고 각 종 연구의 심사 및 전문가 타당도 설문과 제언 자료 작성 등의 아르바이트와 온라인 회의가 있었다.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불러준다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고
일을 의뢰해준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만은 변함없는데
이 일이 마지막이 될까하는 걱정도 사실 조금은 있다.
괜찮다.
그런 날이 온다면 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면 되겠지.
건강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의 건강과 일상을 지켜주는 힘은 무엇보다도 일이다.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서울을 떠나는 이사도 남편의 암투병도 약간의 무심한 아들 녀석의 결혼도
그리고 늙어서도 여전히 불투명한 나의 앞날까지도 모두 잠시 잊게 된다.
따라서 나의 아르바이트는 계속 진행형이다.
시켜줄지는 모르지만
제주에서 귤 따기와 고사리 따기도 한번 해보고 싶고
(그러려면 먼저 제주 한달 살기라도 해야는데)
어느 바닷가 멋진 뷰를 가진 숙소 청소도 해보고 싶고
(그러려면 그런 숙소를 가진 주인장을 알아야는데)
내가 좋아라 하는 <불꽃야구> 볼보이는 못할지언정 무언가 보탬이 되는 일도 해보고 싶고
(무엇이든 괜찮다. 이 늙은이의 쓰임새가 있다면야. 스튜디오 C1 관계자들아 읽고 있니?)
그 무엇보다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녀석 돌봄 아르바이트도 애타게 희망하나
(아들 녀석아. 일단 살을 빼자. 독립후 야식으로 인해 살이 너무 쪘다.)
세상일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내 몫으로 일이 주어진 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9월도 잘 보냈다. 10월을 맞이해보자.
그런데 많이 아깝기는 하다. 소중한 9월이 가는 것이.
저 우아하고 고상한 보라색 꽃이
말라 비틀어져 떨어지는 것을 보는것만큼이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