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가교환의 법칙

나에게도 적용되기를 희망한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밑지고는 못산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도 꽤 있다.

재정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남는 장사여야 뛰어든다는 신조이다.

적어도 등가교환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등가교환의 법칙이란 물질이나 에너지가 서로 변환될 때 그 가치가 동등한 경우에만 성립한다는 법칙이나

모든 교환에는 동등한 가치의 것을 요구한다는 의미로 사회, 경제학적인 현상에도 반영되고 있는 원리이다.

그리고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공정이나 공평

그리고 1/N 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하게 된다.

절대 내가 하나라도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왜 이 법칙이 제대로 뇌리깊이 인식이 안된 것이냐?

우리 엄마는 그리 너그러운 인성의 소유자는 아니었고(은행원 출신이었으니 셈법에는 능하셨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상남자 스타일을 선호하기는 하셨으나

자짤한 이야기나 돈 문제를 시시콜콜 따지는 것에는 젬병이셨던 터이니

(그래서 세무서나 은행일은 모두 엄마몫이 되곤 했었다.)

아마도 아버지를 조금은 더 닮은 듯도 한데

그래도 평소에 베풀면서 살아라, 니가 조금 손해보는 쪽을 택해라 이런 이야기는 들었던 것도 같다.

엄마인지 아버지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지 왜 나는 내 몫을 챙기는데 명확하지 못했던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만

이제야 바꾸고 싶다해도 바뀔리는 없을 거라는 것쯤은 안다.

그냥 내가 하고 말고 내가 내고 말고 그리고 넘어가는 것이 마음 편했던 것 같다.

결코 돈과 마음이 넉넉해서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오늘 갑자기 등가 교환에 대한 생각이 든 것은 순전히 시립미술관 전시물에 쓰여있었기 때문이다만

그것이 많고 많은 전시물 중에 하필 눈이 띄었기 때문이다만

지금껏 명절마다 열심히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없었던

작년부터 명절이 조금은 편해진 내 삶이 조금은 불쌍해보여서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렇게도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만들고 기름 냄새에 지쳐서는

이 좋은 계절의 명절을 즐기지도 못했었는지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제사를 지냈으면

가끔은 고생했다고 봉투도 가끔 받고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복이라도 받았어야 하는데

지금 내 주위에는 열다섯 번째 항암을 준비 중인 남편과

했던 이야기 하고 또 하고 또하시는 시어머님과

(물론 건강하게 양로원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만)

주말인데도 일하러 출근한 여자 친구도 없이 늙고 뚱뚱해지는 아들 녀석뿐이다.

(아무도 안하려고 하는 갑자기 생긴 이번 주말 행사에 가정도 없고 하니 자원해서 하겠다고 손을 든 모양이다. 이런 것은 또 나를 빼다 박았다.)


많은 이득이 남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등가교환까지도 안되더라도

최소한의 복만큼은 가끔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래야 살만한 세상이라고 힘을 내고 웃는 일도 생기지 않겠는가?

로또 1등은 안되어도 3등쯤은 당첨되는 행운이 한번쯤 와주면 좋겠다.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드는 추석 당일 저녁이다.

명절인데 이렇게 주구장창 추적추적 비가 내리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나를 다독여본다만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일기예보가 틀리는 행운이라도 내게 오기를

오늘 밤 볼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낮은 슈퍼문에게 빌어보련다.


새로 산 로봇청소기가 문을 열어둔 남편 방에 진입했다가

방바닥에 흩어져 놓여있는 컴퓨터 연결선을 건드려서 경고 문구가 떴었다.

이런 일이 있을까봐 청소기를 돌릴 때 남편 방 문을 닫아두곤 하는데

오늘은 하필 점심 먹는 시간이라 확인을 못했더니

이런 대참사가 벌어졌다.

구입하고 며칠 되지 않은 로봇청소기가 고장났을까봐

남편 노트북에 이상이 생겼을까봐(요새 그것으로 모든 일을 다 처리하는 중인데)

순간 아찔하고 눈물이 찔끔났다.

남편은 내가 청소기 돌린다면서 자기 방문을 닫아주는 것이

청소기 소음 때문인줄로만 알았다한다.

극심한 기계치에 일상 생활 센스 제로인 사람이다.

도대체 일상생활의 어디까지를 알려줘야 하는 것이냐?

로봇 청소기가 전선 위를 지나가면 안된다는 것은 기본이 아니냐?

방바닥을 훑고가는데 그럼 전선을 다 피해갈 줄 알았단 말이냐?

AI 기능을 너무 과대해석한 것 아니냐?

등가교환에 실패한 나를 탓해야지 누구를 원망하겠냐.

안경을 벗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로봇청소기 회전솔에서 찝힌 전선을 분리하는데 성공했고(손이 벌벌 떨렸다.)

그 순간 별식으로 먹은 점심의 에너지가 모두 소멸함을 느꼈다.

등가교환은 개뿔.

일방적인 봉사와 노동과 헌신의 날들이다.

이번생은 누가봐도 폭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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