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에는 백화점이죠

맛점의 기본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도 꾸리꾸리하고 비 내리는 아침으로 시작한다만

차마 세 번째 무모한 도전에 나설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이제 제법 날씨도 서늘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해가 쨍하고 나야 지온도 기온이 올라가는 법이다.

몰려오는 우울함의 극치를 털어버리려

갑자기 필을 받아 냉장고 청소를 시작한다.

언젠가 먹겠지 하고 남겨두었던

토마토 캐쳡 1/5, 달달한 월남쌈 소스 1/7, 스테이크 데리야키 소스 1/8를 과감히 버린다.

아들 녀석이나 있어야 먹는데 나와 남편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다.

혹시 몰라서 핫 케익용 1/5남은 메이플 시럽은 남겨두었다.

또 언젠가 먹겠지 하고 남겨두었던

각종 밀키트에 포함된 면 종류(칼국수, 건면, 꼬들면 등 다양한 것들이다.) 들도 모두 버린다.

아마 올해 먹을 라면도 거의 끝이지 싶다만

라면 2와 1/2개는 남겨둔다. 비상식량용으로다가.

냉동실은 고춧가루 빼고는 거의 다 비웠고

남편이 선물 받은 다양한 것들(그러나 먹지 않는 버섯, 한약, 기타 등등)을 빼고 나면

아주 단촐한 것들만 남겨두었다.

이제서야 나다운 냉장고이다.


다행히 어제 전선과의 접촉사고를 만났던 청소기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우울감은 더 이상 참지못하고 오전 산책에 나선다.

더 우울해지면 안된다.

체력도 찾고 정신도 챙기기 위한 산책이다.

늘 그랬듯이 3일째 빨간 우산과 허리 복대와 함께이다.

명절 연휴에는(주로 명절 다음날) 그동안 못갔던 백화점을 한바퀴 돌아주는 것이 내 오래된 루틴이었다.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는 절대적인 생각과

계절이 바뀔때쯤의 패션을 한번 둘러보는 아이쇼핑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말이다.

손과 발의 세밀한 움직임이 어려운 남편을 위한 동계용 바지도 하나 있음 사고 말이다.

바지 지퍼 올리는데 5분 이상이 소요되고 힘들다 한다.

지퍼가 없는 바지가 있을까 싶어서 살펴보기로 한다.

백화점 방문의 명분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명절 뒤 고속터미널 지하 상가는 오전부터 사람들로 붐볐고

(아마 나 같은 생각에 집을 나선 사람들일 수 있다.)

오늘따라 지름신이 나를 점령하지 않아서

남편 옷도 내 옷도 사지 않고 오로지 구경만 했고

(남편 것은 없었고 내 것으로 여전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끼류이다.

허벅지를 꼬집어서 간신히 사지 않고 돌아섰다. 색깔별로 많다.)

리모델링을 방금 마친 백화점 지하 푸드 코트에

(여기도 사람으로 꽉찼다. 몇몇 코너에는 줄도 엄청 섰더라.)

감태 김밥과 전복 데친 것

그리고 자잘한 불고기와 달걀로 뒤덮은 도시락과

올 명절 세 번째 도전인 송편을 사가지고 왔다.

아들 녀석이 도착하면 뷔페식으로 나누어 먹으려 한다.

어제 끓인 곰국도 있고 지금 방금 끓인 닭볶음탕도 있다만

아들 녀석이 어느 것을 좋아라할지는 모르겠다.

이제 아마도 예보에 따르면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태풍의 경로도 바뀐 것 같다만

제발 빨간 우산과 헤어질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눈에 진짜 잘 뜨이고

사진에도 꽤 멋진 색으로 나오긴 한다만

우산을 쓰는 날들이 이제 지겹기만 하다.


(송편은 오늘 산 세 번째것이 제일 나았고

데친 전복을 전복내장에 찍어먹는것이 제일 맛났다.

역시 비싼것이 맛난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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