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의 세상

세상은 요지경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이 편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너무도 다양한 시각의 민원성 글이 올라온다.

그렇게 긴급한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대략 분류를 해보면 주차 관련 내용이 제일 많은 듯 하고

(멀쩡하고 비싼 차인데 전기차 충전하는 곳에 하루 종일 세워둔다든지

주차 칸이 아닌 곳에 서 있다던지 두 칸을 차지하고 있다던지 하는 케이스이다.)

층간 소음이나 흡연의 피해 혹은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가 잘못된 경우가

그 다음으로 많고

아주 강성으로 읽은 사람까지 기분이 나빠지게 작성하는 사람과

팩트만 적어두는 사람 등으로 유형이 나뉘기도 하며(시각차란 존재하는 법이다.)

택배 오배송이나 사용하지 않는 물품 나누기 등은 그나마 귀여운 의견이다.

아파트 운영의 투명하고도 빠른 시스템을 반영하겠다는 현재의 추세에 맞는 것 같다만

지나치게 많은 정보 제공으로 나에게는 피로도로 다가오기도 한다.

가끔 커뮤니티센터 골프 연습장 예약과 방문차량 등록 등으로 없앨수는 없는데 말이다.

괜찮다. 두달 후면 이사간다.

그때까지 내가 그런 민원의 대상이 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글을 올리는 분들은 자신은 다 잘하고 사시는거 맞겠지?

남편은 거의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소리를 너무 크게 질러댄다고 싫어한다.

부모들이 왜 제지하지 않냐 불만이다.

나도 아파서 조퇴한 날 잠을 좀 자려는데 시끄러웠던 기억은 있다만

아이에게는 무한 관대한 세상이다.

아픈 남편을 달랠 수 밖에...


어제 지하 커뮤니티센터에 오랜만에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챙겨 갔다.

1달에 2잔 무료 음료 쿠폰도 사용할 겸 말이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일할 좌석을 찾는데

평소 내가 충전하면서 일을 하던 그 자리에는 노트북과 그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사람은 없다.

할 수 없이 충전 없이 일을 하려고 남은 곳 중에 탁자가 그나마 높은 곳을 찾아서(그래도 낮았다만)

허리를 숙일대로 숙이고 일을 하고 있는데

가끔씩 고개를 들어보면 그 자리에는 여전히 노트북과 가방만 있다.

자리를 맡아놓은 것인가?

그 노트북은 충전도 하고 있지 않은데 꼭 그 자리여야만 했나?

자리맡기 신공은 대학때 도서관 이후로 또 처음이다.

슬며시 기분이 나빠질라 했으나 코 앞에 닥친 에코스쿨 관련 회의 자료 제작에 몰두하느라 그냥 넘어가줬다.

내가 두 시간여 작업을 마치고 나올때까지 그 자리는 그렇게 사용되고 있었다.

저걸 사진 찍어서 커뮤니티 플랫폼에 올렸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그런데 올리면 다음부터는 저런 일이 없을까?

해당 당사자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될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니 말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해주는 능력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만

나는 그 능력을 적용하는 범위가 사람별로 다른 것 같다.

누구에게는 후하고 누구에게는 엄격하다.

대체로 잘 모르는 사람에게 더 후하다.

후하다기보다는 그냥 넘어가주는 것이다.

특히 가족에게 엄격해서 아들과 남편의 미움을 사서 받는 편이다.

나름 이유는 있다.

내가 엄격하게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원성을 받는 일을 안하게 될 것이라는

순전히 교육자적인 마인드의 발로이다.

아들 녀석 친구들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한다.

<쟤는 집이 군대야.>

내가 엄하고 빡빡하고 봐주지 않는 군대의

나쁜(?) 상사와도 같다는 뜻일게다.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살았더니

아들 녀석은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별다른 어려움없이 잘 적응하게 되었다고

(우리 엄마보다 더 빡빡한 상사는 없었다고)

가끔은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런데 남편은 그것을 못견뎌한다.

자기는 학생이 아니라고

교사들은 왜 주변 사람들을 다 학생취급을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엄청 싫다는 소리일게다.

그러면 그런 소리를 듣지 않게 하면 되는데

자신의 행동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세탁기에 넣는 옷 주머니에 종이를 넣어 세탁물을 홀라당 다 털게 만들고(수십 년 전부터의 신공이다. 덕분에 세탁기 필터 청소를 오랫만에 방금 마쳤다.)

휴지를 한 번 더 쓴다면서 사방에 꼬불쳐 놓고

(휴지를 아낄 생각을 말고 큰돈을 아껴라.)

소변 상태를 보겠다고 변기에 물을 내리지 않고

(변기 주변 사방으로 소변이 튀는것은 안보이나보다.)

자기가 나를 도와준다고 밥먹은 그릇을 개수대에 옮기다가 결국 깨트리고(손에 힘이 없으니 내가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도)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는 게 1도 없다.

아직도 신혼 집들이날 친구들을 불러서 저녁 늦게까지 놀다가

내가 힘들게 설거지와 마무리 청소를 마칠때쯤

나를 도와준답시고 음료수병을 정리하다가

사이다를 거실에 다 쏟아서

그걸 치우면서 눈물을 흘렸던 때가 생각난다.

(물론 남편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그러면 말이라도 잘 듣거나 아니면 잘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니 문제이다.


어제는 저녁을 먹으면서 나에게 운동을 하라고 잔소리를 해댄다.

발목 운동을 안해서 발을 접지른거라고

걷기와 숨쉬기 빼고는 운동을 전혀 안한다면서

나중에 하나뿐인 아들 녀석에게 내가 짐이 될까봐 걱정된다고.

10번을 참아주기로 했는데 이건 조금 너무하다.

자신이 아파서 지금 우리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은 안하는 것일까?

물론 병에 걸린것이 일부러 그런것이 아닌것은 잘 알고 있다만 어떻게 이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일까?

자기는 엄청 운동을 하고 있어서 근육이 빵빵하다 한다.(다리만) 과연 그럴까?

삐쩍 말라서 누가봐도 많이 아픈 사람이 분명한데.

이런 말을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마음에는 의문표가 열 두개 생겼다.

내로남불의 끝판왕이 여기 있었다.

그런데 잠시 화를 누르고 생각해보니

모두 다 그런 것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를 버티고 살아내는 것이겠지. 아니면 우울증이 오겠지.

어젯밤 한번 참기를 잘했다. 이제 아홉번 남았다.

우리는 다들 극단의 내로남불의 세상에 살고 있고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일지도 모른다.

아마 나도 그럴 것이다.

내가 평범한 사람의 범주안에 분명 들어있을테니 말이다. 다만 그 정도가 덜하기를 바래본다.


(오늘 대문 사진은 나의 오래된 노트북 자판이다.

잘 살펴보시라. 다 똑같이 보이지만 실은 하나가 들려있어서 요새 내 작업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어느 것일까? 저 정도로 표가 안나니 보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사용하는 나만 안다. 이런게 내로남불이 아닐까?

그 일을 당하는 해당 당사자만 느끼는 것 말이다.

사진으로 보니 자판이 엄청 더럽다. 닦아줘야겠다. 무엇이든 무슨 일이든 객관화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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