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69

오류가 났지만 신난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째 어제 이번 주 강의안을 잘 살펴보기 싫더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꼼꼼하게 살피지 못하면 오류가 생기기 마련이다.

두 강의 제목이 서로 헷갈렸다.

A 강의에 B 강의 이름을 PPT 바탕으로 넣은 것이다.

학생들은 잘 모를지언정 내 눈에는 표시가 난다. 꼭 이렇다.

그래도 오늘은 중간평가 시험이 더 중요한 것인데 그것은 빵구가 나지 않아 다행이다.

평가 문항에 신경을 올인 했더니 강의안에 미미하지만 오류가 생긴다.

둘 다 완벽한 것은 이제 나는 힘든가보다.

예전에는 완벽했던 때도 스스로 나에게 놀라고 감탄했을 때도 분명 종종 있었는데 말이다.

오늘은 두 강의 모두 지난주 암석 샘플링한 것을 기준에 따라 분류해보고

우리학교에 제일 많은 암석은 무엇이고

그 암석은 어떤 기작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각자 세 개의 샘플링한 암석을 무작위로 선택하고 같은 것끼리 같은 종이 위에 모아두는 것이다.

처음에는 쉬웠지만 점점 양이 많아지면서 이것인가 저것인가 고민의 흔적이 나타난다.

그리고 암석은 표면이나 크기나 모양으로는 분류가 되지 않으니

조성과 광물 그리고 색이나 광택 등을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자신의 알고 있는 바를 모두 꺼내본다.

이 과정이 바로 내가 원하는 <과학하기> 이다.

언제 내 주위의 암석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겠는가?

학생들의 분류 결과

우리학교에는 다른 곳에서 이동한 암석이 아니라면 화강암이 가장 많고

중간 중간에 석영반암과 화강편마암도 보인다.

물론 사암이나 이암들도 보이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꽃을 분류하는 것보다 암석 분류가 더 어려운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했더니

제법 이야기를 잘 한다.

이제 내 스타일의 수업에 어느 정도 적응한 듯 보인다.

오류가 있었지만 신난다.

과학사 수업에서는 오늘 전쟁과 과학자에 대한 다소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깊이 있는 토론을 수행했고

상상력 수업에서는 암석 분류와 멸종위기동물을 증강현실로 구현해보는 어플을 사용해보았다.

그리고는 평가 시험이었는데

평가에 임하는 자세는 정말로 케바케이다.

채점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하다.

평소에 열심히 했다면 누구나 다 답을 쓸 수 있는 문항을 내는 것이 나의 평생 신조였다.

조금 당황한 표정의 학생도 보였다만.

아마 기말 평가에는 조금 더 익숙한 얼굴들이 될 것이니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회의에 참석해야겠다.

회의 후에는 첫 회식도 있다.

언제 집에 가려나..

(맛난것을 먹고 판교역까지 태워다주신 고마우신 분 덕택에 지하철 탑승완료다. 판교역은 엄청 화려하고

내 손에는 회식 맛집에서 산 반찬 세 개가 들려있다.

조금 늦었지만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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