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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nt Sep 11. 2023

조시

"조시를 낮게 해야될 것 같아요. 지금 칼 박기 빡빡해요...."


내 표정이 굳는다. 레이저 커팅 머신의 발진기에서 빔을 쏠 때, 그 빔을 발산하는 레이저 헤드의 높낮이 값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탓이다. 그때마다 빡빡한 구멍으로 구부려진 칼을 대고 고무망치로 힘껏 내리치느라 손목에 무리가 갈 선임들에게 미안함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왜 아직도 감을 찾지 못하는 지 스스로 자책을 하기도 한다. 어쩔 땐 내가 어떻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딱딱 맞출 수 있겠는가라며 스스로 자책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어찌됐든 마음이 편한 건 하나도 없다. 


 "칼 안 빠지게 잘 좀 해달래요"


 이번엔 거래처 도무송 집에서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그 연락을 받은 사무실 도안사 분께서 그 내용을 전달해주셨다. 조시가 헐렁해서 수백장에서 수천장에 이르는 인쇄물들과 강하게 부딪쳐야하는 목형판에서 칼이 빠져나온다는 불만이었다. 이 전말을 알게 된 사장님은 곧장 내게 책임을 물어오셨다. 


 "조시를 잘 봐야해. 동판기계는 몰라도 자동이나 수동기계는 칼이 빡빡하게 잘 들어가야해. 안그러면 칼 빠지고 인쇄물 망가지거나 기계 망가지면 우리가 물어야해!"


 헐렁한 조시 탓에 칼을 박은 자리마다 접착본드를 그득히 발랐는데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또 다시 죄책감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래서 나름 변명으로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이려 해보기도 한다. 오로지 감에 의존해야 하고, 합판이 일정한 두께나 강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변수가 생길 수 있다면서 속으로 주절거리는 식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정치 않은 조시 값이 나온다는 것을 합리화할 순 없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내가 적절히 대응하고 대처해야할 일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뼈 아프지만 신중치 못한 나를 탓하고 받아들이며 조금 더 신중하게 조시를 본다. 

 

  얇은 목재를 여러겹 접착해 만든 버니어 합판에 캐드 도안과 같은 모양으로 구멍을 내기 전에는  'ㄷ' 혹은 그 역상으로 '조시'라는 과정을 밟는다. 그 어원이 어디서 온진 몰라도 목형집에서 '조시를 본다'는 말은 합판에 레이저 가공을 하기 전 간단한 가로/세로/대각선을 그려서 칼을 지긋이 넣어보는 작업을 의미한다.  


 조시를 통해 확인하고 조정하는 값은 두 가지다. 하나는 레이저 빔이 발사되는 헤드와 뉘어진 합판 사이의 거리고, 다른 하나는 레이저 헤드가 움직이는 속도다. 전자에서는 합판 윗면의 구멍 두께를 조시하고 후자에서는 합판 아랫면의 구멍 두께를 조시한다. 


 만약 합판 위면의 구멍이 좁다면 레이저 헤드를 위로 올려 거리를 늘려준다. 그러면 합판에 닿는 레이저 빔의 두께가 넓어지므로 합판에 나는 구멍두께도 넓어질 것이다. 또한 합판 아랫면의 구멍이 좁다면 레이저 헤드의 속도를 늦춰 합판에 가해지는 레이저 빔의 양이 많아지도록 한다. 그러면 합판 아랫면의 구멍이 넓어진다. 만약 위와 달리헐렁하다면 그 반대로 값을 조정해준다. 


 두 가지의 변수와 세 가지의 결과값이라는 점 때문에 여섯 가지의 경우의 수가 나타난다. 


넓음/좁음/적당함 --- 윗면/아랫면


여기서 더 골치아픈 건 위와 아래가 정반대 상황이 될 때다. 그런 경우엔 합판에 장력이 생겨 한쪽으로 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윗면은 넓은데 아랫면이 좁다면 아랫면에 박힌 칼이 합판을 밀어내면서 합판이 오목해진다. 그 반대로 윗면이 좁고 아랫면이 넓다면 윗면이 칼에 밀리면서 볼록해진다. 전자는 도무송 기계에 들어갈 가능성이 일말 있지만 후자는 가망이 없다. 재작업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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