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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Aug 05. 2021

월간 집

집은 편안한 안식처이어야만 하나요?

    



 결국 올림픽은 개최되었고 덕분에 주말드라마 광 자매는 2주째 결방이다. 바스락 소리에 침을 흘리며 무조건 자극에 무조건 반응하는 순돌이의 학습된 행동처럼(녀석은 간식 봉지 소리를 구분함) 주말 저녁 8시만 되면 나 역시 TV 앞에 자동으로 앉는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유일한 재미를 앗아간 주최 측의 횡포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서도 말이다.


“최소한 주말드라마는 볼 수 있도록 편성했어야 되는 거 아냐?”


  광 매를 못 보는 것에 대한 나의 불만에도 남편은 대답이 없다. 늘, 저 정도의 무표정과 저 정도의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다. 서로에게 길들여져 딱히 서운할 것도 없다. 역시 그 정도의 세월을 함께 한 탓이겠지. 어쨌든 TV를 보기로 맘먹은 맘이 아까워 [월간 집]이란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기로 했다. 잡지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 며칠 전, 잠시 보게 된 재방송에서 젊은 친구들의 달콤한 사랑과 시대를 반영한 싸한 아픔이 잘 짜인 각본 위에서 통통 튀는 것을 느껴서이다.  


“ 집에서 사는(Live) 여자와 집을 사는(Buy) 남자의 내 집 마련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마치 확대경을 사이에 끼운 것처럼 시선을 사로잡은 문구였다. 집이 어떤 의미냐고 들어본 적도 물어본 적도 없었던 내가 그저 대중에게 던진 질문에 나이답지 않게 상념에 잠기는 건 아마도 퇴행의 단편일지도 모른다.


 특히 집이란 것에 대해 생각을 골똘히 하는 요즘이다. 나 역시 수시로 이사를 다녔지만 그때와는 달라져 있다. 아마 안정감이 필요한 주기라는 것이 이유 중 하나 일 것이다.


 예전엔, 집이란 그저 금액에 맞춰 사고파는 것. 생활을 위해 필요한 공간 정도였다. 그러나 [월간 집]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집이 주는 안락함을 새삼 되짚어 보게 된다.



고단하고 힘들 때 사고 싶은 내 집을 떠올려 봅니다.
그 집은 힘든 하루를 위로받는 안식처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도 있는 공간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잡히지 않는 꿈일 뿐.
정작 살고 있는 집은 힘들었던 하루의 연장선이자 또 다른 전쟁터일 수 있고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간직한 곳일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공간이겠죠.
언젠간 저도 꿈꾸는 내 집을 살 수 있을까요.
정말 내 집을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올까요.

(드라마 6회 중 주인공 영원이의 내레이션)



체념과 희망이 교차되는 덤덤한 영원이의 목소리가 잔잔한 음악을 타고 우리 집 거실 한 복판에 살포시 나와 앉는다.







우리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어디를 가도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집이 아닌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한 발자국 들이는 순간 온전히 나의 공간이 되는 곳이 집이다. 세상과 나와의 경계를 자연스레 구분해주는 곳. 고단했던 오늘을 보듬어 주고, 힘들 내일을 위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일한 보람이 쌓이는 곳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허리 숙여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맛있는 냄새가 침대 속까지 베이고 개켜진 옷가지들 사이에 숨어들어도 마냥 행복할 수 있는 곳. 2미터도 안 되는 나의 몸을 안전히 누일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집이다.


과연 그런 곳만이 집일까.


때로는 힘들었던 하루의 연장이자 또 다른 전쟁터일 수도 있고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숨어 있는 곳이라 어쩔 수 없이 돌아오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강남으로 이사 가자던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강북의 재개발을 노리다가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강남의 아파트값 때문에 종일 열심히 일하고도 원망을 듣는 잡지사'월간 집'편집장이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집일 수도 있다.



애인이 강남의 유명한 학원 강사라 강남 아파트가 결혼 조건이 돼버린 남상순(13년 차 잡지사 에디터). 아파트가 당첨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집일 수도 있다.



집을 살 여유가 있으면서도 달세를 사는 여의주(13년 차 잡지사 에디터). 그 핑계로 자신의 존재를 아버지에게 알리고 싶은 비밀을 가진 여기자가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집일 수도 있다.



그나마도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가져보는 영원이(10년 차 잡지사 에디터)의 미래의 집일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로 변해져 있을까.

울산()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이곳에서의 적응기가 길어지고 있다. 풋풋한 풀 냄새와 수시로 올라오는 흙냄새가 친숙한 이곳이 정이 들어 안주하고 싶어 진다.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풀밭을 휘저으며 쑥을 캐고, 버무린 떡을 나눠 먹으며 털털한 이웃 아줌마가 되어가는 내가 좋다. 이른 봄에 모종을 구경하고 텃밭에서 만나는 각종 먹거리를 챙기며 몸에 기운을 올릴 수 있는 시골이 좋다. 한여름 뙤약볕에 고개 숙여 흔들리다 해가 지면 어느새 생생해진 나뭇잎처럼 언제나 한 자리에 서 있는 나이고 싶다. 한껏 쌓인 눈을 치우며 서로에게 구슬땀을 보여주는 겨울도 나는 괜찮다. 정해진 고된 삶이 내 몫으로 돌아오는 길목일지라도 따뜻한 품을 열어 맞이해 주는 집이면 족하지 않을까. 서러운 어제와 쉬 이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매미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고 한 풀 꺾인 여름이 이내 몰고 올 가을을 연상케 하는 오늘,  낯선 청춘들의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투영시키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우리 집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서둘러 돌아가고 싶은 집. 나는 그런 집을 여기에서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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