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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Jul 01. 2021

하루

굿바이! 나의 엄마여!!

  내 눈높이 시선 자락에 걸터앉은 앞산 능선은 오늘도 말이 없다.

누르스름하다가 불그스름하다가 종래는 희뿌연 어둠으로 한 날을 저물게 하는 것 외는 하는 일이 없다.

그래도 곁을 보이는 건 절로 눈에 차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저무는 빛의 반짝임을 보았다.

이내 눅눅한 바람을 털어 내더니 잣나무 숲으로 달음박질치고 있다.

겨울 잔 서리에 멍들었단 소릴 듣기 싫은 건 매한가진가보다.

나 역시 알 바 아니지만 휘어진 능선 너머 그리움 있어 슬며시 펜을 잡아본다.   

 

엄마다.

언젠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가사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총 맞은 것처럼 머릿속에 꽉 채운 한 사람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 속에 엄마가 있었던 이유를 꽤 오래도록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 화요일이 두 번째 맞이하는 기일이었다.

자식들이 반으로 나누어져 한쪽에서는 제사를, 한쪽에서는 기도를 했다.

제법 큰 상자에 갓 따온 버섯을 정결하게 쟁여 넣고 엄마를 기억하기 위한 시간으로 달려갔다.

오빠가 사는 서울은 그래서 좋다.    

수시로 왔다가는 굵은 소나기가 딱 그날을 기억나게 했다.    




“경아 넌 안 와도 돼. 엄마 퇴원하셔도 될 것 같아”

“그래 언니? 그런데 왜 병원에서는 준비하라고 했지”

“글쎄 말이야”

“그래도 마음이 좀 그러네. 엄마를 봐야 하지 않을까?”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 차는 위험해. 엄마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도돌이표처럼 입술 언저리를 맴돌더니 5시간쯤 후에 다시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 경아야. 내가 엄마를 못 보게 했구나... 어쩌면 좋을꼬 어쩌면 좋을꼬”   

 

언니의 통곡 소리는 거짓말처럼 내 폐부를 찢어 놓았다.  

  

 

그렇게 엄마를 맥없이 보내드리고 벌써 2년이 지났다.

서둘러 따라온 세월의 무게 앞에 우두커니 섰다.   

 

유령 같은 아버지의 방랑을 참아내신 분.

열번 제사를 군소리 없이 지내신 분.

받은 생활비를 쪼개고 부풀려 집을 장만하신 분.

아버지의 부재를 채워 주신 분.

따뜻한 도시락을 학교로 배달해 주신 분.

양말까지 뜨개질하여 신겨 주신 분.

내 친구들을 나처럼 챙겨 주신 분.    


내가 만든 주홍글씨를 엄마는 좋아했을까?    


어느 날이었다.

순종과 헌신을 미덕으로 살아가시던 엄마에게 반란이 시작되었다.

종갓집 외며느리로 제사를 버린다는 건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엄마의 승리로 오랜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런 엄마가 멋져 보였던 건 아버지를 이겨서였다.

삶 전체를 던져 선택한 예수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의 예수가 나의 예수가 되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궁금했다.     

유월 끝 날에 엄마는 나와의 약속을 보름 앞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초여름 무성한 나뭇가지에 그리움 걸쳐 놓고 떠나버렸다.     



  



하루가 지나고 있다.

하루하루의 행간을 궁금한 엄마로 채워나가고 있다.

야금야금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는 땅따먹기 어린 시절 놀이처럼

허전한 나의 기억을 당신 궁금함으로 채워가고 있다.    


굿바이! 나의 엄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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