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트 Jul 30. 2022

être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인생은 나를 이해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거의 언제나, 무료하고 따분하다 못해 휘몰아치며 고통스럽도록 외롭다.  사람이 지니는 힘의 크기는 정확히, 이처럼 "장엄함을 결코 보지 못하는" 중독적 외로움에 빠져있는 사람의 일상이 지니는 지난한 누적의 힘만큼이나 비대할 것이 분명하다.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 실체가 있지만 실재하고 있지 않은 허공의 나를,  세계로 끌어내어서 알맞은 자리에 앉히는 사람. 그는 가히 파괴력을 지닐 만큼 위험할 수밖에 없다. 없던 것을 짓고나서 지은 것을 파괴할 , 생성의 숭고함과 신성함은 강조되고, 그에 힘입어 더욱 강렬하고 뚜렷하게 대비되는 파괴의 상실감은 그만큼  고조된다. 이때 파괴는 결코 '다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의 파괴',  자체이다. 다시는, 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전으로는 돌아갈  없다는 뜻이다. '되돌아갈  있는 ' 오직, 있다가 없게 , 잔해가 남은 사후의 장소뿐이다. 그곳에서는 - 그때부터는, 비로소 시간은 불가역해지고, 지레 뒷걸음질 치는 발걸음조차 고작  발치 , 앞으로 나아가는 누적일 뿐이다. Action is the best antidote to despair. 뒷걸음질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직진으로 곧게 걸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수밖에 없다. 정신을 바로 차린다는 ,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행동을 해야 한다. 그외의 것은 비뚤어진 걸음걸이이다. 비뚤어진 걸음은, 그것이 저절로 낫기 전까지는 그냥 함께 안고 가야 하는 자기 성질이다.

이전 09화 나, 자아, 관계의 삼중 무의식: <비바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