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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트 Mar 06. 2023

메타버스에서 버스를 빼면

뭐라도 나누고 싶어, 도움이 되길 바라.





오십 퍼센트를 해야 되는지 백 퍼센트를 다 해야 되는지 모르겠으면, 일단 백프로 해가라고 했다. 학교생활 지침서. 절반만 해간 다음에, 아, 다 하는 거였어요? 그런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그런다 해도 그걸론 이제 해결되지 않는 나이가 됐어. 용서나 해결이란 말 자체가 안 어울려. 그만큼 성장을 못하고 인정도 못받고 지나가는 게 너한테 너무 손해거든.


잘 모르겠을 땐 그냥 다 해놓으면 불이익이 없잖아. 살면서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아, 그치. 그렇게 말했다. 나는 최대한 무심하게 툭 말했는데, 눈이 반짝이는 걸 보고 있으니까 꼭 네가 공감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제일 억울한 일이 뭐였어요?


억울한 일? 지금은 다 까먹어서 생각이 안 나네.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렴풋한 느낌들만 총총 떠올랐다. 속으로는 피식 하는 웃음도 조금은 났다. 그러고 보면 눈치 못채고 지내고 있지만, 몇가지 삶의 조건들이 참 그러하다. 와중에 억울하지 않은 조건을 꼽아보는 게 더 어려운데, 그렇다고 전부 다 억울하다고 대답하는 건 무성의하고 난해하기만 하다. 그럴 순 없으니까 차라리 기억 안 난다고 답한 것 같다. 그때, 짧지만 씁쓸한 마음이 짐짓 들었다.


억울한 걸 다 이고지고 살아가면, 살 수가 없어, 입 안에만 말이 맴돌았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억울함에 절여진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말들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내 좌절한 삶을 보면서 너도 조금은 좌절할지도 모르니까. 좌절을 심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랬다.


너도 나처럼, 절망을 동력 삼아서 그저 더 열심히 해야만 하는 상황 자체가, 그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날이 올까?





메타버스의 버스가 세계관 또는 세계를 의미하고, 메타버스는 세계가 가짜라는 걸 알고 네 마음대로 다루는 거야. 그럼 메타버스에서 버스를 빼봐. 메타는 뭘까? 세계만 빼면 되겠지. 알고 다루는 게 메타겠지?


학교 급식 어때, 맛있어? 급식을 먹을 때, 입에 밥을 넣은 순간에 아, 밥이 맛있네, 어, 오늘은 맛이 없네. 그건 그냥 감각이잖아. 오늘도 때 되니까 학교에서 밥을 주네. 잘 먹겠습니다. 이건 메타인지가 아니야.


내가 한 달 동안 급식을 먹어보니까 보통 화요일에는 맛있는 걸 하나 더 주네? 매주 목요일에는 과일이 나오네. 격주에 한번 금요일에는 면이 나오네. 이건 맛을 느끼는 게 아니라 체계를 생각하는 거지?


체계가 영어로 뭐야? 몰라요. 아니야, 너 알고 있어. System, 읽어봐. 시스템. 핸드폰에 설정이 영어로 이렇게 써있지. 그거 누르면 어떻게 돼? 그냥 게임화면 나오고 게임 하라는 게 아니라, 음량은 어느 정도로 조절할지, 1인 플레이만 가능하게 둘지, 아니면 누가 너한테 같이 게임하자고 멀티플레이 제안할 수 있게 켜둘지도 선택할 수 있지.


그게 시스템이야. 체계 또는 설정. 그럼 메타라는 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지내는 게 아니라, 처한 상황 전체를 아울러 보고 분석하는 것, 어떤 때에는 조작까지도 가해보는 거. 그게 메타겠지?





새로 입학한 고등학교의 급식이 맛있는지 물었다. 밝은 표정으로 ‘맛있어요’ 하고 답하는 너를 보면서 안심했어. 너의 세상이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어. 내가 대단히 여유로운 사람이 못 되어도, 그래도 뭐라도 나누고 싶어. 도움이 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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