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기 시작하고 여름이 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들은 것 같은데, 그런 것 따위에 나누어 줄 관심이 없었다. 당장 눈앞에 해부학 강의록과, 땡시와, 조직학 과제용 슬라이드가 쌓여 있는데 변해가는 계절을 어떻게 눈치챌 수 있을까. 다만 해부학 실습을 마치고 실습복을 벗을 때 조금 덥구나…하고 느껴지는 찰나가 있기는 했다.
입학하고 맞이한 첫 학기에는 시험이 26개나 있었다. 26개! 그리고 한 학기는 20주. 한 주에 시험을 두 개, 세 개씩 칠 수밖에 없는 잔인한 시간표였다. 2월에 시작하는 골학부터 숨 돌릴 틈 없이 달리는, ‘의대생’의 삶이란. 머슴 밥으로 푸짐하게 떠서 아빠 숟가락으로 사정없이 퍼먹다 이젠 토하겠다 싶을 때, 다음 주에 시험이 하나도 없는 주말이 찾아왔다.
춘천에서 대구에 환승 없이 가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바로 고속버스를 타는 것. 서울에 가서 KTX나 SRT를 타는 방법도 있겠지만, 파김치의 단계를 넘어서 푹 찐 감자처럼 뭉개진 정신과 몸으로는 도저히 택시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기차를 타는 일련의 과정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금요일 오후 5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기숙사에 들러 책가방을 내려놓고 집으로 갈 짐을 챙겼다. 고속버스 역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가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잡아타고, 땅으로 꺼질 듯이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휴게소를 들린 기억도 없이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해는 다 지고 저녁 10시, 버스는 동대구에 도착해 있었다.
집은 동대구역에서도 한 시간을 버스로 더 가야 했다. 전날부터 엄마에게 내일 갈 거라고 신이 나 말했지만, 반응이 영 미적지근했던 게 마음에 걸려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그 시간이면 공인중개업을 하시는 엄마는 집에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니, 집에 도착하면 당연히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집은 온기 하나 없이 싸늘했다.
늦는 날인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모임이 있는 건가? 같은 합리적인 추측부터 시작해서, 실신? 납치? 등 가능성이 희박한 추측까지 온갖 상상을 하며 기다렸지만, 결국 엄마는 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야?”
“응, 딸 집에 왔어? 저녁은 먹었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냐고.”
“아, 딸, 사실 그게…. 교통사고가 났어…”
피가 거꾸로 솟았다. 교통사고? 교통사고? 단어 하나가 사정없이 나를 무너트렸다. 방금 교통사고가 났다는 건가? 그런데 전화는 받을 수 있는 걸 보면 생명에 지장은 없는 건가? 팔만 부러진 건가? 다리만 부러진 건가?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수술한 쪽 팔이 부러졌으면 어떡하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보호해야 하는 팔을 찔렀으면 어쩌지? 머릿속에 폭풍이 일었다.
당황한 걸 눈치챈 엄마는 그제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니, 사거리에서, 왜 그 이마트 앞 우체국 있는 사거리 있잖니, 거기서 좌회전을 하려는데 직진하려던 차가 와서 박았지 뭐야, 언제? 한 이틀쯤 전에. 괜찮아, 그냥 팔이 좀 안 움직이고 목이 결려. 괜찮아. 너 공부하는 거 방해될까 봐 이야기 안 했어.
이 공부가 그렇게 대단한 공부던가. 그렇게 대단해서 엄마가 교통사고 난 것도 몰라야 하는 건가? 뭐가 그리 잘나서 엄마 다친 것 하나 제때 듣지 못한단 말인가? 비뚤어진 분노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동생에게 향했다. 동생은 억울해했다. 엄마가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누나가 알면 분명히 당장 내려오겠다며 난리를 칠 테니까! 말하지 말아 달라고 아픈데도 사정 사정을 하더라!
다음 날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갔다. 도끼눈을 뜨고 엄마를 보고 있자니 엄마는 피식 웃으며 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병문안 선물로 받은 딸기를 씻어오라며 내밀었다. 입을 꾹 다물고 딸기를 씻고 꼭지를 하나하나 자르며 분노를 식힌 다음, 폭풍 같은 잔소리를 시작했다. 어떻게 사고가 났는데 말 한마디 안 할 수 있어? 너무한 거 아니야? 이 능글맞은 아줌마는 아이고 그래 너 이럴 줄 알았다, 는 식이다. 그 뻔뻔함에 기가 차서, 딸 입장에서 생각 좀 해보라고 기어코 화를 냈더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는 품이 어이가 없었다.
환자에게 화를 계속 내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 결국, 사이좋게 딸기를 나누어 먹고서 간만에 팔짱을 끼고 병동을 아주 천천히 몇 바퀴나 걸었다. 춘천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대구에서 있었던 엄마의 손님들 이야기, 동생이 요새 집에서 먹는 단백질 파우더 이야기. 몇 달 동안 쌓인 이야깃거리를 죄다 쏟아내고서 내일 다시 보기로 약속하고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싹 말라 바닥을 뒹굴고 있는 벚꽃잎을 보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정말 5월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