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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사삼공삼 Jan 29. 2021

프라이빗 힐링

요새 사람들은 예쁜 카페에서 힐링하고, 낯설고 사랑스러운 풍경을 보면서 힐링하며, 호텔에 찾아가 욕조에 몸을 누이면서 힐링한다. 최애의 목소리를 들으며 힐링하고, 증권사 앱 속 수익률 혹은 적금 앞자리가 바뀐 것을 보면서 힐링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힐링’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뭔가 더 좋은, 꼭 한 번쯤 가지거나 해 봐야 할 상품이 되고, 경험이 되고, 사진으로 남아 자랑거리가 되는 시대. 휴학을 하고 시간이 참 많아진 터라 이런저런 ‘힐링 아이템’을 모조리 접해보았다.


 예쁘다고 이름난 카페, 맛있다고 소문난 초밥집, 프렌치 레스토랑, 코로나바이러스가 판을 치는 시국이라 여행은 못 갔지만 방구석에서 에밀리와 함께 파리에 가 보기도 하고,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고 뮤지컬 넘버를 부르고, 대본을 펴서 리어왕이 되어 딸들을 죽어라 욕하는 대사를 읊고, 나만의 향수를 만들고, 나무를 조각하고 전통주를 맛보면서. 소위 ‘힐링”을 느껴보려고 해 보았다.


 그런데, ‘힐링’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다.

 예쁜 곳에 있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맛있는 걸 먹으면? 당연히 행복하지. 그런데 그 장소를 떠나면? 맛있는 음식을 다 먹고 돌아서면? 뿌린 향수의 향이 다 날아가면? 넷플릭스를 끄면? 그럼 그만 아닌가.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긴 하는데, 그 이상의 의미를 찾지는 못했다. 힐링이란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참 고달픈 사람들인 우리가 한 숟가락쯤 되는 설탕을 얼굴만 한 솜사탕처럼 크게 부풀린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여기서 끝내면 섭섭하잖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힐링의 정의는 ‘지치고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 그렇다면 힐링을 위해서는 스스로 지친 상태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가진 상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 나는 지친 상태인가? 아니요.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가?



작고 사소한 어린 시절의 기억.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나. 뜨개질을 배우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 집 근처 공방에 갔다. 요즘은 유튜브로 동영상을 보면서 배우지만, 그때는 공방에 계신 아주머니들에게 도제식으로 뜨개질을 배우는 식이었다. 한 아주머니께 설명을 듣고 한참을 대바늘과 털실을 붙잡고 싸우다, 겨우 겉뜨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 안뜨기를 가르쳐 주셨는데, 맙소사. 너무 헷갈리는 거다.


바깥쪽으로 찌르고, 한 바퀴 돌리고, 안쪽으로 끌어오기. 안쪽으로 찌르고, 한 바퀴 돌리고, 바깥쪽으로 끌어서 꺼내기. 겉뜨기 하나 안뜨기 하나를 무한 반복하는 고무 단 만들기를 가르쳐주셨는데, 직전에 한 게 겉뜨기인지 안뜨기인지, 그럼 이제 해야 할 것은 안뜨기인지 겉뜨기인지, 그럼 실을 어떻게 돌리고 바늘을 어디로 찔러야 하는지. 패닉에 빠진 얼굴로 공방 아주머니께 도움을 청하기를 아마 열 번이 넘어갔을 때,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던 공방 주인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주어진 임무를 겉뜨기만 하는 것으로 바꿔 주셨다. 겉뜨기와 안뜨기의 지옥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내게, 맞은편에 앉아 계시던 다른 아주머니께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저걸 헷갈릴 수가 있지?”




어린 시절의 기억은 기준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가끔 놀라울 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기억 또한 그랬다. 마치 굉장한 바보를 보는 듯한 말투. 어조. 고개를 숙이고 실과 대바늘을 조금 더 만지작거리다 그만 내려놓았다. 다행히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 엄마가 집에서 코바늘로 티코스터를 만드는 것을 구경하고, 털실을 풀었다가 다시 뭉치는 것을 돕긴 했지만, 뜨개질을 더 알고 싶지 않았다.


대략 20년 정도가 흐른 이후에도 그 한마디 말이 마음에 박혀 있다니 옹졸하기 그지없지만, 어쨌거나 이건 상처다. 그렇다면 이 상처를 힐링해보자! 어려워 봤자 얼마나 어렵겠어! 털실을 사고, 바늘을 사고, 유튜브를 틀었다. 인내심이 대단한 유튜브 속 선생님은 100번을 다시 물어보아도 똑같이 다정한 말투로 알려주었다. 오롯이 나와 선생님 둘만의 질의응답 시간. 넥워머 한 개와 세 개의 목도리를 완성하고, 지금은 스웨터를 만들고 있다. 더 이상 뜨개질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그 목소리는 날 상처입히지 못한다.


바로 이걸 힐링으로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깊이 박힌 대못을 찾아 깊은 마음속을 헤매는 것. 상처를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 못을 뽑아내고 깊이 파인 그 균열을 메우는 것. 흔한 맛집이나 카페가 해줄 수 없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힐링. 나만 할 수 있는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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