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싫어한다. 대구 출신답게 더위 저항은 한껏 높지만, 냉기 저항이 바닥인 탓이다. 찬바람이 조금이라도 불어올라치면 곧바로 스카프, 목도리로 둘둘 얼굴을 감싸고, 겨우내 롱 패딩과 혼연일체가 되어 지낸다. 더위는 아무렇지 않은데, 추위는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다.
그래도 겨울이라 좋은 것을 찾아본다면 역시 귤이다. 과일이라면 다 좋아하지만, 귤을 가장 좋아한다. 따뜻한 장판에 배를 깔고 이불 속에서 귤 까먹기는 내 취미이자 특기이다. 한창 먹을 때는 5kg짜리 한 상자를 일주일에 한 개씩 해치우곤 했는데, 같이 일하던 사람이 깜짝 놀라서 얼굴이 왜 그렇게 노랗냐, 황달 온 것 아니냐 하고 물을 정도였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춘천에서 두 번의 겨울을 겪고 나니, 귤 말고도 좋아할 만한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눈이 푸지게 쌓인 모습이나, 발목 너머 쌓인 눈을 제일 처음으로 밟는 기분. 눈이 쌓인 겨울 산,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나 귀여운 눈 오리! 그리고 최근 새로운 겨울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롱 패딩 주머니에 책을 넣어 다니는 것이다.
알고 있는가? 롱패딩 주머니에는 책이 들어간다. 어지간한 단편 소설 한 권은 주머니 한쪽에 문제없이 들어간다. 세상에! 책을 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 있다니! 지하철을 기다릴 때, 지하철에 앉아 있을 때, 버스를 기다릴 때 등등 자투리 시간이 생기는 그 모든 순간에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아니라 책을 쓱 꺼내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어깨 무겁게 가방을 메고 다니지 않아도!
물론, 이미 주머니가 이런저런 물건들로 가득하거나 예쁜 가방을 메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면 이 발견이 별로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둘 다 해당이 없는 나에겐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다음부터 서울 나들이를 할 일이 생길 때면 항상 주머니에 책을 한 권 넣어 간다. 롱패딩을 더 입을 수 없는 계절이 오면 결국 가방을 들어야 하겠지만, 귤 외에도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