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껍질과 나뭇잎이 알려주는 자연의 신호들 - 트리스탄 굴리 -
나에게 온 나무를 생각한다. 어릴 적 우리 집 초가지붕 보다 큰 키를 자랑했던 감나무. 나무가 컸기에 그늘이 넓었다. 여름이면 나무 아래의 평상에서 숙제를 했고, 밥상을 놓고 온 식구가 밥도 먹었다. 가을이 되면 감을 따서 엄마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한 잎 얻어먹으면서 생감의 떫은맛을 알아갔다. 집 옆에는 포도밭이 있어 포도나무가 줄을 지어 나와 함께 커 가고 있었다. 여름이면 주렁주렁 달린 포도가 부잣집으로 생각하게 했다. 포도밭 가장자리를 둘러싼 탱자나무에는 수백 송이의 나팔꽃들이 아침마다 합창을 했다. 아마 나팔꽃의 보랏빛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 되었을 것이다. 나무들은 어린 나의 생활에 풍경이 되어 주었다.
식물은 나의 관심 대상이다. 그렇다고 나무나 꽃들의 이름을 많이 알고 있거나 그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식물들을 관찰하고, 옆에 있기를 좋아하고, 그들을 알아가는 재미를 즐긴다. 그랬기에 교사로 재직할 땐 교실 창가에는 많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다른 교실에서 버린 죽어가는 화초도 들여 살려내고 모종을 다른 분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지친 내 마음을 화초를 돌보면서 위로받았고 화초들이 커 가는 모습에 기대감을 가졌다. 매 년 화초들을 기르면서 한 포기, 한 줄기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고 감사해했다.
어느 해의 장미꽃 화분은 나를 흥분시켰다. 학교의 큰 행사에 이용된 장미꽃 화분이 교실마다 한 개씩 주어졌다. 잘 핀 장미꽃은 나의 책상 한편에서 존재감을 뽐내며 나의 사랑을 받았다. 분홍빛 장미꽃잎이 지고 작은 열매가 맺히고 잎이 한 두 잎 떨어지면서 가을을 보냈다. 대부분의 화분들은 화장실로 옮겨 겨울방학을 보내게 했지만 장미꽃 화분만은 집으로 데리고 왔다. 따뜻한 실내에서 잎들은 계속 싱싱하게 살아갔고 다음 해에도 장미꽃을 피웠다. 대개 화분에 옮겨진 장미는 그 해를 넘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선생님들의 칭찬에 감격해했다. 하지만 삼 년 째에는 장미꽃이 그리 예쁘게 피지 못했고 꽃잎이 바깥에서부터 마르기 시작하더니 활짝 피우지 못하고 결국 시들해지면서 죽고 말았다. 참으로 아쉬웠지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 신작 코너에서 "나무를 읽는 법'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저자 트리스탄 굴리는 '자연계 셜록 홈스'라고 불린다니 그가 얼마나 많은 숲과 나무들을 관찰했을 것이며 그가 얻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알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작은 시골집에는 몇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어 돌보면서도 잘하고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특히 두 그루의 소나무 중 한 그루는 수형이 매우 아름다워 집 마당을 대표하는데 혹 잘못 키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소나무는 무엇보다 햇빛을 좋아한다니 그 조건은 충족하고 있다. 위치가 안방 앞이라 마당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고 주위에 소나무를 위협할 수 있는 다른 나무가 없다. 십여 년을 잘 커 왔으니 앞으로는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다행이다. 앎은 곧 능력이 될 수 있어 공부는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책을 읽다 보니 걱정되는 나무가 있었다. 나무를 보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나무가 석류나무였다. 왜냐하면 지지난 해에는 전과 다르게 많은 석류가 달리더니 지난해는 너무 적게 열매가 달렸다. 뿐만 아니라 "도장지(웃자람 가지)는 나무가 질병이나 상해, 가뭄, 화재, 노령 또는 스트레스가 많은 사건이 결합하여 고난을 겪고 있다는 신호이다."라는 것을 읽을 때 바로 석류나무가 떠올랐다. 유독 도장지가 많이 나왔고 보기에도 좋지 않아 웃자람 가지들을 많이 잘라냈다.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건강하게 자라지 않고 있다는 것만 알아도 다행이지 않은가.
"자연은 엄격한 규칙을 비웃는다."
질서 정연하게만 돌아가는 자연계인 줄 알았는데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결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식물이 위쪽의 잎을 아래쪽의 잎과 다른 각도로 자라도록 하여 햇살을 많이 받도록 한다니 궁금증이 풀렸다. 잎들을 관찰해 보니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해서 위치를 잡아간다는 것을 많이 느껴왔던 터였다. 융통성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만의 원칙을 지키려 애썼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나무가 공유하는 한 가지 요소는 바로 반복된 계절과 긴 세월에 걸쳐 지속되는 줄기의 높이라고 한다. 높이가 중요한 것이다. 내 삶의 높이를 나무처럼 키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