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
“ 엄마 우리 언제 다시 살던데로 이사가? ”
오늘 이사와 짐을 정리하던 엄마가 말없이 종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종희의 마음을 이해 못할 엄마가 아니였다.
학교에서 똑 소리 나며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가
하루아침에 친구들과 떨어져 변두리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걸 알았을땐
맏딸의 의젓함도 누나의 성숙함도 잊은 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던걸 엄마는 생생히 기억했다.
엄마는 조용히 대답했다.
“ 아빠 오시면.”
"아빠...?"
종희는 볼 한쪽을 씰룩 올리며 울상으로 얼굴을 찌프렸다.
하시던 일이 흔들리던 벌써 몇 달 전부터 아빠는 집에 오시지 않았다.
그 후 엄마가 방에서 주무시는 걸 본 적이 없는 종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우리 집 높아~”
뜬금없이 동생 종수가 방에서 튀어나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야 3층이 뭐가 높아...아니 정확히는 2.5층이지..반 지하에 1층 위에 2층이니까..”
“아니 주변에 더 높은 건물이 없어~그러니까 우리 집이 제일 높아. 다보여~
특히 누나 방은 동네가 다 보여.”
9층 아파트에서 살다 온 종희는 동생 종수의 말이 싱겁게만 느껴졌다.
“니들 짐은 니들이 정리 하는 거다. 알아서 필요한 것만 잘 정리해.
내일 분리수거해서 버릴 건 다 내놓고”
“내일이 분리수거 날이야 엄마?"
종희는 아파트 살 때를 생각하며 반갑게 물었다.
"그런 거 없어 그냥 내놓으면 되. 아파트나 그런 거 있지 이런 덴 맨날맨날 내놔도 된다.
더 편하다야”
종희는 엄마의 맨날맨날 이라는 말이 무질서하게 느껴졌다.
역시 질서 반듯한 아파트가 좋은곳 이란 생각이 들면서 여기서 살 앞날이 우울하기만 했다.
지금은, 아무거나 탓하기라도 해야 숨을 쉴 수 있을거 같았다.
그날 밤
몇 시나 되었을까.
엄마도 종수도 모처럼 일찍 잠든 오늘.
이삿날이 피곤할 듯도 한데 종희는 정신은 더 또렷하여 뜬 눈으로 창 밖을 응시하였다.
그러다 동네가 다 보인다는 종수 말이 생각나 커텐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어둠에 익숙한 시간이 지나고 밤 풍경이 종희의 눈으로 들어왔다.
멀리 도로와 대교의 가로등이 촘촘히 밝혀 있고
동네아래 불 꺼진 집들 사이 간간히 빛 나는 창 밖 불빛들.
다 보인다는 종수의 말처럼 종희네 빌라가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건 맞는 말이였다.
그리고 종희 방 창 바로 아래 이 빌라 사람들의 공용인 것으로 보이는 낡은 장판의 평상이 어슴 프레 보였다.
종희는 오늘 이사 낮에 평상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반 지하에 사신다는 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셨는데 종희는 내심 무시하는 마음이 들어 인사도 안하고 엄마 뒤에만 서 있었다.
“....아파트는 노인정 집이 크게 다 있는데...저런데 드럽게 앉아있고...치....”
지금 종희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살다 떠나온 아파트가 제일 그립기만 하다.
그곳에서 종희와 종수와 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만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네 식구는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었다.
딱딱한 창 틀에 팔꿈치를 대고 지난날 생각에 밤바람을 맞고 있던 종희는
무심코 어둠속에서 뭔가들이 움직인 것을 보았다.
“뭐지?"
종희는 숨죽이며 아래에 시선을 고정했다.
평상근처를 잽싸게 들락 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희미한 소리로 그것이 고양이인것을 알았다.
종희는 애완동물은 익숙했지만 길고양이는 처음 이였다.
밤에 눈을 밝히며 다니는 모습은 더더욱 처음 보았다.
하지만 신기한 마음은 아주 잠시뿐.
우리 가족이 이사 온 곳이, 종희가 살게 된 이 곳이
도둑 고양이 따위도 사는 곳이란 생각에 울분이 나기 시작했다.
이내 종희는 이유 모를 설움에 복받쳐 창 아래 주저앉아서 소리 없이 울었다.
.
.
.
“얘들아 아침먹자”
종수는 엄마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힘껏 이삿짐을 날랐더니 작은 몸이 욱씬 거린다.
요즘 들어 더욱 명랑한 척 하지만 종수는 늘 아빠가 그립다.
하지만 자신마저 침울하면 누나와 엄마가 더 힘들 것이기에 오늘도 종수는 철없는 막내 짓을 하기로 한다.
“아하~암 엄마, 누나는?"
“니 누나 아직도 자나봐라. 깨워 아침먹게..”
잠 덜깬 눈의 눈꼽을 떼며 종수는 누나 방을 열었다.
누나 방이래야 부엌과 붙어있는 바로 맞은 문 이였다.
“누나ㅡ 일어나”
눈을 크게 뜬 종수는 엄마를 뒤돌아 보았다.
“엄마ㅡ 누나 없어요”
"뭐?"
아직 쌀쌀한 2월이지만 종희는 몸에서 열이 났다.
“쿵쿵쿵쿵 탕탕탕탕”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 가면 평상위에서 있는 힘껏 용을 썼다.
종희는 밤새 평상아래 숨어들어와 잠을 잘 길고양이가 미워 한숨도 못잤다.
그러다 겨우 잠들다 만 새벽에 생각했다.
“날이 밝기만 하면 나가서 다 쫓아내야지.”
그 새벽.
평소 일요일이라면 단잠을 자고도 남을 더 전에 종희는 잠옷위에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가차 없이 평상위에 올라 뛰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놀라 소리도 못 내고 이미 흔적도 없이 빠져나간 후 이지만 종희는 쉽게 내려올 수가 없었다.
그만큼 간밤 종희는 떠돌이 주제에 우리 새집에 사는 고양이가 밉고 또 미웠다.
누나 방 창 아래에서 인기척을 느낀 종수는 밖을 내려다 보았다.
누나가 멀뚱히 서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잠 옷 위에 외투하나 걸치고 서 있는 모습이 당장 마음에 걸렸다.
종수는 누나의 얇은 옷에 찬 기운이 더 스밀까.
계단을 내려갈 시간까지 참을 수 없어 창가에서 냅다 소리를 질렀다.
“누나ㅡ! 밥 먹어! 엄마가 빨리 올라오래ㅡ!!”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이 든 종희는
그제서야 자신이 밖에 나오던 이른 때보다 아침이 훨신 밝아 졌다는걸 알았다.
새삼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옷깃을 여미며 얼른 뛰어 집으로 들어왔다.
올라가는 계단부터 엄마의 계란찜 냄새가 풍겼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 했다.
“역시 우리 집에 떠돌이 고양이 따위가 살게 할 순 없어!”
< 3월 >
봄 방학이 끝나면 종희는 6학년이 된다.
이전에 사는 동네에서 40분이나 멀어진 이곳에서 종희는 왠지 친구들을 만날 자신이 없다.
핸드폰을 만지작 하던 종희는 메신저 상태를 여행~* 이라고 바꾸곤 아예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학교에 가게 되도 한동안 종희는 이사에 대해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적어도 아빠가 돌아 오실 때 까지는.
잠시 큰 숨을 들이쉬고 종희는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밖에서 엄마의 말소리가 들렸다.
“우리도 모르고 살아요. 정말 몰라요...네..네..네 지나 겨울부터 집에도 안들어와요.
네...네...네..꼭 갚을게요. 네..네...네........”
<지난 겨울 >
한 밤에 현관에서 엄마와 뭔가를 말씀하시던 아빠의 모습을 종희는 기억했다.
외투도 안 입으신채 양복바람으로 서둘러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아빠..밖에 추운데..” 하고 혼잣말을 했었다.
부도 라는 말도 그 즘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더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엄마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서 밤을 새우셨다.
며칠 후 여름부터 예약된 겨울체력 프로그램으로 동생 종수가 집을 떠난 사이
한 통의 전화를 받으신 엄마는 종희를 데리고 다 저녁 어디론가 향하였다.
차를 운전하는 엄마의 표정이 화난 듯 슬픈 듯 알 수 없어
종희는 궁금하단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옆자리에 앉아 갔다.
얼마 쯤 지났을까
깜박 잠든 종희는 엄마의 조심스런 목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종희야. 엄마 들어가서 일할거야. 엄마 일 할 동안 한쪽에 잘 앉아있어...알았지?”
“엄마 여기 어디야? 흥...졸려..”
“여기 장례식장이야..
차에 너만 두고 가면 엄마가 불안하니까 같이 들어가자..
아빠 친군데..어머니가 돌아가셨대...친구끼린 어려울때 도와 주는거야..”
순간 종희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아빠 친구라면 아빠를 위한 일 일터, 절대 엄마 방해 하지 않기. 라고 다짐하였다.
이렇게라도 아빠를 돕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실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어릴 때 할머니 장례가 있었지만 종희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장례식장을 종희는 잘 기억할 것 같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들고나는 사람들이 북쩍북쩍 했다.
상주 이름을 확인한 엄마는 종희를 데리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셨다.
종희와 엄마가 걸음을 멈 춘 꽃 단 위에는 한복을 입고 머리를 쪽진 옛날 할머니 한분이 영정으로 모셔져 있었다.
영단을 향해 절을 하신 엄마 뒤에서 종희는 뭘 할지 몰라 말뚱히 서 있었다.
“ 고생 많으십니다..” 먼저 엄마가 한 말씀을 하셨다.
“.......아...... 예.........” 짧게 답을 하신 아빠 친구아저씨는 계속 바닥만 보았다.
아빠 친구의 표정을 보니 아까 운전하시던 엄마의 표정과 비슷했다.
화난 듯 슬픈 듯 알 수 없어 종희는 어른들이 밤에 운전할 때나
어른들이 장례 식장 에서는 보통 저런 표정 일 것이라 추측해보았다.
장례식장 한쪽 라면 박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종희는
스르르 잠이 들락 말락한 뿌연 시야 속에서 쉴새 없이 쟁반을 들고 나르는 엄마를 보고 또 보았다.
< 4월 >
그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와도 아빠는 집으로 오지 않으셨고 남은 세 식구는 집을 정리해 이사를 했다.
그 사이 예전 살던 곳을 그리워하던 종희는 이제는 식구가 모두 있기만 한다면야 어디든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종희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한밤에 불꺼진 창 밖으로 여러 집들을 내려다 보는 재미가 생긴 것 이다.
처음 종수가 우리 집이 제일 높다. 라고 말 했을 땐 콧방귀를 꼈는데 지내고 보니 밤사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탁 트인 마을 풍경이 종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을 느꼈다.
한참 떨어진 도로에 빠른 불빛을 흘리며 달리는 버스를 보고 있자면 종희는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 이렇게 늦도록 달리는 저 버스에 탄 사람들 다 집으로 가는 거겠지.
아빠가 저 버스 안에 계셨으면 좋겠네..."
그렇게 한참을 봄밤에 감상을 지을 때즘 문득 종희는 평상으로 눈이 갔다.
어슴 프레한 어둠속에 평상은 그대로였다.
좀 더 집중해 보던 중 종희는 제 눈을 의심했다.
여러 개의 검은 물체 들이 재빠르게 평상 아래를 드나드는 것이였다.
“뭐지?....뭐가 저렇게 많지..?”
좀 더 지켜보는 가운데 그것은 작은 것과 몸짓이 큰 것.
아마도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라 확신이 들었다.
종희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려 얼굴에 울상을 지었다.
아마도 예전의 종희 라면 길가 버려진 동물이라도 불쌍히 여기며 먹이라도 줬을테지만
이곳은 안 되는 것이었다.
이곳은 아빠를 기다리며 우리 세 식구가 살고 있는 곳.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오래된 빌라지만 이토록 소중한 곳,
이곳 만은 저런 도둑 고양이들이 득실대면 안되는 것이였다.
종희는 왜 눈물이 나는지 자신도 모르겠지만
고양이가 이젠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비참해졌다.
그때 종희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갑자기 손전등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곤 그 한 밤 중에
평상위로 뛰어 올라가 우당탕탕 쿵쿵쿵 탕탕탕 한껏 분풀이 하듯 발길질을 해댔다.
마치 자신의 슬픔이 고양이 탓이라도 되는 듯 했다.
평상 아래로 몸을 숨긴 어미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은 종희의 탕탕 발 소리가 날때마다
그 안에서 놀라 뛰어 평상에 부딪히는지 지들끼리 뒤받는지 둔탁한 소리들이 내었다.
제일 먼저 평상 바로 앞에 사는 반 지하 1호 에 불이 켜졌다.
그리곤 창 문 너머로 한 아주머니의 얼굴을 비쳤다.
“뭐하니 이밤에...”
종희는 처음 보는 이웃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그 보다 고양이의 처리가 더 급했다.
“도둑 고양이 나가 살라고 하고 있어요. 계속 여기서 살면 안되요.”
그 사이에도 종희의 발길질은 계속 되고 있었다.
“탕탕탕 쿵쿵쿵”
잠시 후
반 지하 1호 윗집인 1층 101호에도 불이 들어왔다.
그 집도 창가로 사람 얼굴이 비쳐져 잠시 밖을 보는가 싶더니 다시 불이 꺼졌다.
반지하 1호 2호,
1층 101호 102호
2층 201호 202호
3층 301호 302호
동네 제일 높은 언덕의 빌라 여덟 집은
밤새 종희의 발길질 소리에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였다.
종희 엄마는 말도 못하고 가슴을 쳤다.
이른 아침 빌라 집집마다 간 밤의 소란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할 수 밖에 없었다.
종희를 꿇어 앉히고 엄한 꾸지람을 하였다. 하지만 딸의 한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아빠가 돌아오실 집에 도둑고양이가 사는거 싫어! 집이 깨끗해야 오면 좋아하시지! ”
“다 내 쫓을거야! 여긴 우리 집이야. 고양이 집 아니야”
종수는 불같이 달아오른 누나의 모습을 처음 봤다.
간 밤 느닺 없는 소란에 창 밖을 내려 봤다가 평상위에서 날뛰고 있던 누나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점잖은 누나고 항상 의지가 되는 누나였다.
하지만 어젯 밤 누나는 화난 듯 슬픈 듯 평상위에서 팔팔 뛸 뿐이였다.
그러나 생각에 잠긴 종수의 진지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고양이와 그 새끼들에 대해 관심이 생겨났다.
“처음 보는데....고양이 새끼들은....가까이서 볼 수 있었음 좋겠다”
< 5월>
종희는 학교에서 새로 이사한 집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새삼 물어보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들이 이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겨울 아빠가 돌아오시지 않을 즘부터 다니던 학원은 모두 끊은 상태이다.
그땐 궁금해 물어보는 아이들이 많고 학원차를 넉살좋게 타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만약 그때 이사를 했다면 들통 나기 쉬웠을 것이다.
미리 학원을 정리 한게 이제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종희는 이렇게 조용히 6학년을 마칠 계획이다.
<6월>
이사 온 집에 가장 좋은 점은 밤 풍경을 보는 것이였다.
9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불빛들은 더 밝고 더 화려했지만 너무 멀어 어쩐지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이 동네 2.5층 빌라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마을은 친근한 이야기 같은 느낌이들었다.
그래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한참을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그렇게 종희는 밤마다
방 불을 끄고 커텐을 활짝 젖히고
두 팔꿈치를 창틀에 대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보았다.
그런데 그 중에도 아랫 마당 평상의 고양이 가족은 종희에게 여전히 골칫거리이다.
사실 종희도 이상스럽긴 했다. 자신도 동물을 싫어하지 않았고 더욱이 훔쳐본 새끼들은
종이 손바닥만 하였으니...동정이 갈 만도 한데...
“...............”
종희는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 할 말을 잃었다.
그때 어둠속에 평상으로 향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종희는 어깨를 움츠리며 머리를 창가 아래로 바투 내렸다.
머리를 빼꼼히 빼고 개슴츠레 시선을 모아 보아하니 지하에 사는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엔 뭔가를 들고 천천히 평상아래 내려놓으신다.
자리에 잠시 서 있던 할머니는 다시 구부정하고 느린 걸음으로 돌아가셨다.
그제서야 몸을 쭉 빼고 창문 방충망에 이마를 갖다 대고 종희는 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후 두리번 거리며 나타난 고양이는 할머니가 두고 간 무언가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러더니 야옹 야옹 소리까지 내며 하며 뭘 먹는것이였다.
“ 한 밤 중에 먹이를 준거야?”
종희는 순간 얼떨떨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몰입되어 다른 사람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엄마고양이가 나와서 먹이를 먹는 사이 새끼들은 재빨리 어미젖을 물어 빨았다.
“열심히도 먹네.....평상 밑이라도 되게 살고 싶나보네..”
여전히 냉소를 안고 있는 종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 왜 아빠고양이는 없지? "
<7월>
“얘들아 일어나, 밥먹자”
종수는 요새 엄마목소리를 알람으로 일어난다.
세배는 더 멀어진 학교를 걸어 다니더니 요새 들어 부쩍 늦잠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 고양이는 다 같이 안살아?"
"뭔소리니? 아침부터..”
“우리집에 새끼낳은 고양이 말야..왜 아빠 고양이는 없어?”
"원래 어미 혼자 키우는거야. 아빠 고양이는 밖에 영역을 지키거나 어디 갔거나 하겠지"
“힘들잖아 그러면...”
“그래서 동물이든 사람이든 새끼가 있으면 좀 잘해줘야지...어디 도망도 못가고 새끼 때문에 사는거니까..”
종희는 잠시 뾰류퉁한건지 속상한건지 눈썹을 모았다 폈다 했다.
“종수 나오라고 그래라. 요새 늦잠이 생겼어”
엄마의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야, 쫑! 일어나”
종희 엄마는 아침부터 서둘러 아이들을 학교로 보냈다.
원래 멀어진 거리이기도 했지만 오늘은 남편을 만나러 가기 때문이다.
고의로 부도를 낼 남편이 아니였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연쇄부도의 여파는 남편을 무너트렸다.
성실한 사람이고 신용도 있어 도와줄 사람도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옛말에 눈물은 혼자 흘리고 웃는건 같이 한다더니 세상에 눈물지을 사람은 남편과 자신 둘 뿐이였다.
돌아가는 주변 상황이 감당할 만하다 생각한 남편은 경찰서로 자진하여 찾아갔다.
종희 엄마도 곁에서 지켜볼 요량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갈 생각이다.
12월 한 밤에 급하게 홑겹 양복으로 나가던 남편의 모습이 작아보였는데
지금은 더 얼마나 까칠해졌을지 매어오는 목을 힘줘 삼키고 집을 나섰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지난 상중에 인사를 나눈 종희아빠의 지인이 앉아계시다.
종희 아빠와 친목회에서 특히 마음이 잘 맞는 사람으로 형사이다.
부도 사건이 터졌을때 가장먼저 의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무원으로 경찰서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부탁을 하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낭패를 볼까 종희 엄마는 몇 번이고 찾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었다.
그러다 올해 초 형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평일에 워낙 먼 지방에서 치루는 상이라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고 조의금만 보낸다고 했다.
종희 엄마 또한 남편도 없고 내가 가야 뭐할까 했었다. 하지만 이내
“나도 이렇게 어렵고 보니 한 사람의 위로가 이렇게 절절한데...
먼데서 어머니 상을 치루면 얼마나 더 사람 생각이 날까...”
내가 어렵고 보니 그제야 남의 곤란함도 눈에 들어오는 법이였다.
그렇게 그날 저녁 내내 차를 몰아 종희를 데리고 그이의 어머니 상을 다녀왔었다.
형사는 내심 자신에게 뭔가를 부탁하면 어쩌나 종희아빠를 외면했었다.
종희엄마가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장, 먼 곳까지 찾아 왔을때도
어떤 부탁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앞섰었다.
하지만 그 날 어머니 영정에 절을 올리고 인사를 나눈 몇 마디 외에
종희엄마는 더 이상 형사를 찾지도 보지도 않았다.
밤 새 내내 장례식장 허드렛일을 도와주다
새벽녘에 딸을 데리고 돌아갔다.
종희 아빠가 경찰서에 자수하러 오겠다고 했을 때
그는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종희 아빠는 고의 부도를 낼 사람이 아니 였다.
형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정당한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리라 마음먹었다.
<8월>
종희와 종수는 큰 문 앞에 서 있었다.
엄마는 건물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사람들에 둘러싸여 안으로 들어가는 아빠 뒷 모습만 보았던 남매는
혹여라도 나오실때도 또 뒷 모습만 보게 될까 멀리 갈 수 없었다.
종희는 엄마의 말씀을 되새겨보았다.
문 안에서는 아빠의 재판이 있다고 했다.
정확히는 오늘이 아빠가 선고를 받는 날이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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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얼마 전 여름 방학식이 있었다.
종희와 종수는 이제 자연스럽게 바뀐 환경을 받아들였다.
누가 물어도 지금을 얘기하는 얼굴에 그늘진 표정은 없다.
종수는 부쩍 책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아빠의 재판을 경험 한 후 자신도 법을 공부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 이유가 정당한 재판 때문 이였다고 믿기 때문이다.
종희는 틈틈이 가족들이 먹고 남은 음식들을 평상 근처에 가져다놓았다.
지난 번 음식을 놓은 자리에 흔적이 말끔하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고양이들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고양이 새끼는 제법 몸짓이 크다. 곧 독립할 것이다.
이제 고양이 가족과도 안녕이다.
고양이와 만의 안녕이 아니다.
종희는 무언가 엄청난 시간을 지나보낸 것 같았다.
그 이별은 아련하고 후련하다.
작고 초라한 집이건만 이 방에서 내다보는 밤풍경의 간간한 불빛들은 청초했다.
분명 환경은 더 보잘것 없어진 상황인데 종희 마음은 뭔가 더 크고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여기 아홉집이 산다.
오늘도 종희의 창 밖은 이야기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