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앎
왜 사람이 앎을 욕망하게 되었는지 파헤쳐 보자. 이 동물은 자신 주변을 특정한 패턴으로 인식한다. 여기서 패턴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관한 유형들의 묶음을 뜻한다. 특히 우리의 신체 에너지를 마구 소비하는 뇌라는 기관은, 오직 생존에 도움 되는 패턴만을 우선적으로 기억한다. 이 말은 곧 뇌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않음을 뜻한다. 즉 뇌는 정확성보단 효율성을 중시한다.(4) 신경계가 이렇게 진화한 이유는 그 편이 생존 확률이 높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의 뇌는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패턴을 생성하거나 중요도를 판단했고, 이런 판단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생존에 유용한 패턴은 반복해서 활용되었고, 그렇지 못한 패턴은 잊혔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동물은 규칙성에 근거하지 않는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다. 곰브리치는 이것을 질서 감각이라 표현했다. “어떤 규칙성에 조율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이 조율은 더구나 학습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주변을 규칙성의 정도나 그것의 반대의 정도에 따라 범주화할 수 있게 해주는 질서 감각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어떤 지식도 결코 모을 수가 없다.”(5) 말하자면 이 동물은 특정한 대상을 임의적으로라도 구조나 형태로 엮어내지 못하면 결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까뮈도 무언가에 대한 이해는 곧 통일이자 환원이요 각인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동물은 맞든 틀리든 본능적으로 구조나 형태를 짜 맞춰 앎을 획득했고, 현실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해하고 학습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
사람은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앎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생태계에서 살아남았다. 이것은 까마득한 과거부터 최근까지 역사를 장식했던 수렵채집인이 앎을 대하는 태도를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이들은 자신 주변에 있던 환경을 알아내는데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미국 동북부 인디언들은 파충류학을 발달시켰다. 그들은 파충류의 각 속을 구별하여 명칭을 붙였고, 종과 변종도 구별하여 각기 다른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 이와 같은 예는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데,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동식물에 관한 지식은 그 유용성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선 지식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유용하거나 흥미롭다고 간주된다는 것이다.”(6)
또 레비-스트로스는 수렵채집인의 앎이 현대인의 그것과 같은 방식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 분류를 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 분류하든지 간에 분류하지 않은 것보다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일이다. (…) 우리가 원시적이라고 일컫는 사고는 이러한 질서에 대한 요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사고에 있어서 마찬가지이며 우리에게 생소한 사고형태를 아주 쉽게 이해하게 되는 것은 모든 사고 속에 이러한 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7) 이들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이 말하고 행동했으며, 사람들은 이들로부터 동일한 본성을 물려받았다. 수렵채집인이 야만적이라거나 미개하다는 편견은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
안타깝게도 수렵채집인으로서 삶은 현대사회가 세상을 차지하면서 거의 소멸해 버렸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에 살던 원주민은 바다 건너온 유럽 사람들이 보여준 힘 앞에 무릎 꿇었다. 원주민의 후손은 사람들이 거주하길 꺼리는 오지에 살거나, 소위 ‘보호 구역’에 의지하여 간신히 살아남았다. 과연 이들에게 미래가 있긴 한 걸까? 수렵채집인을 몰아냈던 현대인의 힘은 현대문명이 창안했던 어떤 앎에서 나왔다. 이 앎은 운 좋게도 유라시아에서 태동하여 유럽에서 꽃필 수 있었다. 과연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앎에 발생했던 변신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4. 최낙언, 《감각·착각·환각》, 예문당, 2022, 144쪽. “지각의 핵심은 정확성이 아니라 효율성이다. 불완전한 정보로부터 뇌는 빠르고 과감한 판단을 해야 한다. Yes/No 또는 Go/Stop을 결정하기 위해 때로는 사소한 차이를 과장하고, 때로는 상당한 차이도 무시한다. 뇌는 생존과 번식에 적절한 행동을 결정하기 위한 장치이지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생존에 유리한 형태로 감각의 정보를 패턴에 따라 재구성한다.”
5. Gombrich, E. The Sense of Order: A study in the psychology of decorative art, London: Phaidon, 1979, 113p. 로버트 페페렐, 《포스트휴먼의 조건》, 이선주 옮김, 아카넷, 2017, 120쪽에서 재인용.
6.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안정남 옮김, 한길사, 1999, 60쪽.
7.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안정남 옮김, 한길사, 1999, 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