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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Oct 10. 2024

이상과 현실 사이 (6)

코로나19와 식량위기

지난날 펼쳐졌던 영광과 앞으로 닥칠 비극은 모두 현대문명이 배출한 온실가스에서 비롯하였다. 1950년대부터 서서히 그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한 이것은, 과학자에 의해 사람의 경제활동이 원인이라는데 명백해졌다. 온실가스의 대부분은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데, 산업혁명 이전에 280ppm이었던 이것은 2024년 9월 기준으로 약 422ppm을 기록했다.(15) 기본적으로 온실가스는 생명체가 살기에 적당한 기후를 만드는데 꼭 필요하지만, 여기서도 균형이 중요하다. 적정 양을 초과한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쌓일수록, 되먹임 작용이 가속하여 지구 생물권이 애써 일궈놓은 항상성을 망가져 버린다. 이런 온실가스를 매해 수백 억 톤씩 대기 중에 방출한 끝에, 우리는 기후변화란 현실을 맞닥뜨렸다. 


만약 현대문명이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다면, 아마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재해로 인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아울러 사람은 21세기가 끝나갈 무렵 다른 동식물과 함께 절멸할지 모를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표현이 과하다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점점 더 가혹해지는 중이다. 만약 우리가 이 문명에 어떤 브레이크도 걸지 않는다면, 한 때 누구나 이상으로 가질 수 있었던 돈, 명예, 쾌락 그리고 성취가 먼지처럼 흩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벌써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은 빈번해진 가뭄과 홍수, 강력해진 폭염과 혹한 그리고 이상해진 산불과 폭풍 등에 시달린다. 또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달라진 현실을 혹독하게 경험했다. 바로 코로나19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해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를 휩쓸었다. 이와 관련하여 기후변화가 아프리카, 중남미 그리고 중국 남부를 박쥐가 서식하기에 알맞은 지역으로 탈바꿈시켰으며, 이 지역에서 증가한 박쥐 종이 지닌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16) 사실 박쥐는 수많은 바이러스의 자연숙주인데, 몸 안에 약 137종의 바이러스를 품고 있으며 이 중 사스, 메르스, 코로나19를 비롯하여 60여 종의 코로나바이러스를 몸에 지닌 채 산다.(17) 또 박쥐는 개체의 수명이 길고 무리생활을 하며 다른 박쥐 종과 함 서식하는 경우도 흔해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생길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박쥐는 독특한 비행 능력으로 넓은 지역에 걸쳐 계절에 따라 이주한다. 즉 박쥐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데 아주 유리한 습성을 지녔다.


이런 박쥐가 다른 야생동물과 먹이를 두고 다투는 와중에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에게 옮겨간다.(18)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서식지에서 밀어내거나, 먹이가 부족해진 야생동물이 거주지로 들이닥쳤을 때 바이러스는 중간 숙주에서 사람에게로 제차 전이하는데, 이를 푸시&풀 Push&Pull이라 부른다.(19) 실제로 코로나19의 진원지라 추정되는 우한 재래시장은 사람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매우 빈번한 곳이었다.(20) 이후 사태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걷잡을 수 없게 번졌다. 이 바이러스는 확연한 전파력과 강력한 치사율로 무장하여 약 6억 8천 명의 확진자와 6백8십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21) 또 거의 모든 나라는 여행이나 산업 활동을 엄격히 제한할 수밖에 없었고, 각국의 경제 성장률은 곤두박질쳤다. 사람들은 감염으로 인한 고통이나 생계 활동의 제약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현대문명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공격했고, 이 문명이 애써 감춰왔던 매우 불편한 진실인 식량 위기를 들춰냈다. 이 바이러스로 인해 불안정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기근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죽음으로 내몰렸다. 코로나가 불러일으킨 참혹한 현실을 살펴보자.


“2019년에는 8억 2,100만 명의 인구가 식량 불안정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그중 1억 4,900만 명은 심각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는 분쟁과 불평등,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등으로 이미 붕괴된 전 세계 식량체계를 악화시켰고,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인구가 굶주림을 직면하게 되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코로나19로 심각한 수준의 기근을 겪게 될 인구가 올해 말까지 2억 7천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2019년 대비 82% 증가한 것이며, 연말까지 기근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영향으로 하루에 6,000명에서 12,000명까지 사망할 수 있다는 의미다. (…)”(22) 


구호단체 옥스팜이 발행한 〈기근 바이러스(Hunger Virus)〉 보고서에 코로나19가 대량 실업, 소농민의 몰락, 인도적 지원 축소, 붕괴된 식량 체계, 기후 위기, 불평등, 분쟁 등을 심화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심각한 식량난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23) 옥스팜은 이 보고서를 2020년 7월에 발간했고, 1년 뒤인 2021년 7월엔 〈기근 바이러스 대확산〉이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과연 식량 위기는 조금 나아졌을까?


“(…) 오늘날, 전 세계 기근 문제를 촉진하는 치명적 요인인 분쟁, 코로나19, 기후위기로 1분마다 11명이 사망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매분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심각성은 더 크다.”(24) 팬데믹으로 증폭된 식량 위기는 주로 예멘, 콩고민주공화국,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서아프리카 사헬 지역, 에티오피아, 남수단, 시리아, 수단, 아이티와 같은 가난한 나라가 힘겹게 버텨내는 중이다.(25) 지금으로 봐선 기후변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향후 물 부족이나 식량 위기 그리고 팬데믹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지구는 하나이며, 지구 생물권은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발발하고 지난 2년 동안 각국은 극심한 혼란을 잠재우고 경제 성장률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찌어찌 사태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진정되었다. 반면 기후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우리는 끓는 가마솥 안에 개구리보다 못한 신세일지 모른다. 잘 알려졌다시피 개구리가 끓는 솥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죽는 이유는 물의 온도가 서서히 오르는 걸 눈치채지 못해서다. 다만 개구리와 다르게 우리는 잔잔했던 솥 안 물이 열기로 요동치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 중이다. 그럼에도 지구라는 가마솥이 티핑 포인트를 넘어 폭주하기 시작한다면, 탈출할 수 없는 건 개구리와 마찬가지다. 지구는 아직까진 사람의 유일한 보금자리이며, 이 사실은 이번 세기가 지나기 전까지 변함없을 것 같다.




15. Global Monitoring Laboratory, 〈Trends in Atmospheric Carbon Dioxide〉. https://gml.noaa.gov/ccgg/trends

16. Robert M. Beyer, Andrea Manica, Camilo Mora,〈Shifts in global bat diversity suggest a possible role of climate change in the emergence of SARS-CoV-1 and SARS-CoV-2〉,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Volume 767, 2021.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48969721004812

17. 안광석, 《팬데믹 시대를 위한 바이러스 면역 특강》, 반니, 2020, 176-179쪽.

18. 최강석, 《바이러스 쇼크》, 매일경제신문사, 2021, 91-93쪽.

19. 최강석, 《바이러스 쇼크》, 매일경제신문사, 2021, 32쪽.

20. 최강석, 《바이러스 쇼크》, 매일경제신문사, 2021, 28쪽.

21. 2023년 7월 1일 기준. https://coronaboard.kr

22. 〈기근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어떻게 식량난을 심화시키고 있는가〉, OXFAM, 2020, 1쪽.

23. 〈기근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어떻게 식량난을 심화시키고 있는가〉, OXFAM, 2020, 3-7쪽.

24. 〈기근 바이러스 대확산: 전 세계 기근 문제를 촉진하는 치명적 요인, 분쟁과 코로나19, 그리고 기후위기〉, OXFAM, 2021, 2쪽.

25. 〈기근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어떻게 식량난을 심화시키고 있는가〉, OXFAM, 202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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