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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Oct 11. 2024

이상과 현실 사이 (7)

기후변화

홀로세를 통틀어 지구 온도가 오늘날처럼 급격히 오른 사례가 없었다. 지질학적으로 1만 1700년 전 신생대 제4기의 플라이스토세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하였다. 이 기간을 ‘홀로세 간빙기’라고도 부르는데, 무엇보다 기후가 안정되고 변동이 매우 줄어들었다.(26) 다만 14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사람들은 이른바 ‘소빙하기’를 겪었는데, 1950-1980년 평균보다 0.4도에서 0.6도 사이로 기온이 떨어졌다.(27) 유럽에선 흉작에 대처하지 못한 프랑스가 대혁명을 겪었으며, 중국에선 굶주림으로 인한 봉기가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건국을 초래했고, 조선 역시 기근에서 예외가 아니었다.(28)


이처럼 0.5도의 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엄청난데, 지구 온도는 1850-1900년 평균보다 무려 1.1도나 상승했다.(29) 기후변화가 불러온 사태는 너무 다양해서 언급하기 벅찰 지경이다. 날씨 변동과 같은 기본적인 영향을 포함하여 해수면 상승, 빙하 유실, 해양 산성화, 느려지는 해류, 온대기후 지역의 아열대화, 생물다양성 붕괴 그리고 팬데믹까지. 심지어 얼마나 심각한 재해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쉽사리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각국이 기후변화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금까지 총 6번의 종합보고서를 발간했으며, 보고서를 발간할 때마다 기후변화에 미치는 현대문명의 영향을 점점 더 명백히 밝혔다. 2023년 3월에 《제6차 평가보고서(AR6) 종합보고서》를 살펴보면, ‘현황 및 추세’를 다룬 대목에선 ‘기후변화에 관한 인류의 영향은 명백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며,(30) 향후 극한 기후로 발생할 악영향에 가장 취약한 건 기후변화에 가장 적게 기여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31) 그러면서 ‘단기적 대응’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하게 줄이지 않는다면,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와 건강 더 나아가 생물 다양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경고했다.(32) 


이처럼 사태의 심각성과 해결의 필요성이 보고서에 잘 나와 있지만, 과연 각국에 해결 의지는 있는지 의문이다. 제6차 종합보고서 이전에 발간된 제2실무그룹과 제3실무그룹 보고서엔 각각 탈성장, 식민주의, 자본주의, 권력관계와 탈성장, 불평등, 부정의 같은 체제 전환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 내용은 정작 각국 대표가 문구 권한을 갖는 실무그룹 보고서의 요약본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되려 ‘정의로운 전환’에 관련된 사항은 다수 포함되었다.(33)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각국은 철저히 현대문명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여 성장하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국이 체제 전환을 즉각 받아들인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 전복과 같은 혁명적인 일에 해당할 것이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실질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는 조만간 특권층과 나머지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가시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코로나19는 어느 누구도 재해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증명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바이러스는 기후변화를 슬기롭게 극복했을 현실도 잠깐이나마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인도는 국가봉쇄령 동안 수도 뉴델리에 맑은 하늘이 드러났으며, 특히 인도 북부 잘란다르 주민들은 200km 밖에 있는 히말라야 다울라다르 산맥을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34) 마치 코로나19는 지구 생물권에 진정 위협이 되는 생물은 무엇인지 묻는 듯하다.


사람은 이상을 꿈꿀 상상력을 갖췄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그 끝에 탄생한 현대문명이 만든 세상에 사람들은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홀로세가 없었다면 과연 문명이 자구에 나올 수 있었을까? 홀로세는 기나긴 지구 역사에서 기적과 같은 시기이며, 사람들은 축복받은 기간 동안 문명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현대문명은 지구가 선물처럼 쥐어준 홀로세를 마치 성질 급한 어린아이처럼 망가뜨리는 중이다.


그동안 생태계는 지구와 함께하며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급격히 온난해지는 기후로 인해 발생한 페름기 대멸종 때 약 96%의 생물 종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이처럼 심각한 절멸을 초래했던 페름기 대멸종조차, 약 6만 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일어났다. 반면 사람 때문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홀로세 대멸종은, 1750년부터 약 250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이뤄지는 중이다. 문제는 여섯 번째 대멸종에 사람 역시 휩쓸려가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동물이란 현실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우리는 앞으로 돈, 명예, 쾌락 그리고 성취를 이상으로 추구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상과 현실 사이에 균형 잡을 수 있을까? 사람은 단 한순간도 현실을 완전히 극복하거나 이상을 온전히 실현한 적이 없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조금이나마 이상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상과 현실 어딘가에서 헤맬 테지만, 한쪽으로 치우쳐 버리면 세상이 위태로워진다는 걸 현대문명이 증명했다.




26. 조천호, 《파란하늘 빨간지구》, 동아시아, 2019, 33쪽.

27. 조천호, 《파란하늘 빨간지구》, 동아시아, 2019, 45쪽.

28. 조천호, 《파란하늘 빨간지구》, 동아시아, 2019, 47-51쪽.

29. 〈기후변화: ‘기후 재앙 마지노선 1.5℃ 돌파 가능성 커졌다〉, BBC코리아, 2023.10.07. https://www.bbc.com/korean/features-67037560 

“현재 지구 기온은 1850~1900년 평균보다 약 1.1℃ 높은 수준이다.”

30. 핵심 저자팀 외,《기후변화 2023 종합보고서》, 기상청 옮김, IPCC, 2023, 42쪽. “인간 활동은 주로 온실가스 배출을 통해 명백히 지구온난화를 유발하였으며, 2011~2020년의 전지구 지표면 온도는 1850~1900년보다 1.1℃ 상승하였다.(…)”

31.  핵심 저자팀 외,《기후변화 2023 종합보고서》, 기상청 옮김, IPCC, 2023, 50쪽.

32.  핵심 저자팀 외,《기후변화 2023 종합보고서》, 기상청 옮김, IPCC, 2023, 92쪽.

33. 〈기후변화 요약본에는 담기지 않은 ‘탈성장’〉, 프레시안, 2022.04.11.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41111211781413

“앞서 말한 탈성장 등 체제 전환을 위한 큰 씨줄과 작은 날줄들은 요약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고소득국가든 저소득국가든 성장과 발전, 자본주의 시스템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요약본의 문구를 선택할 권한은 IPCC 회원국의 정부 대표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정의로운 전환은 상대적으로 모든 국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라는 듯, 불평등, 부정의와 함께 이번 보고서의 요약본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34. 〈인간을 격리했더니…가려졌던 지구 모습이 복원됐다〉, 한겨레, 2020.04.14. https://www.hani.co.kr/arti/science/future/9367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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