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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Oct 07. 2024

이상과 현실 사이 (3)

혈연, 예술 그리고 종교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어떤 이상이라도 추구하며 살았다. 우선 혈연으로 맺어진 자식을 이상으로 삼곤 했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자식을 집단에 도움 될 인물로 양육하는 과업은 분명 생리적 본능에 따른 자연스러운 이상임에 틀림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호나 상징을 매우 잘 다루는 꽤나 특기할 역량으로 회화나 조각 그리고 건축을 통해 논리를 생산하는 역할을 이상으로 삼는다. 이리하여 특정 문화권의 주요한 양식으로 채택된 창작 논리는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직간접적으로 예술에 기여하도록 끌어들였고, 그만큼 문화권은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에 있어 다채로워졌다. 


다만 삶의 원동력 측면에서 문화를 바라본다면, 종교만큼 효과적으로 불안을 잠재워줬던 것도 없다. 그만큼 종교는 다른 문화적 요소보다 우선하여 이상으로 여겨졌고,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강렬한 신앙심을 불러일으켜 자신 삶을 헌신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여러 종교는 오랜 세월 체제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우리는 종교로 인한 화합이나 갈등을 빼놓곤 역사를 논할 수 없게 되었다.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종교를 이상으로 삼은 사람들은 넘쳐난다.


종교가 왜 이리 사람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는 건 꽤나 어려운 문제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턴가 삶의 죽음, 육체와 영혼, 현세와 내세와 같은 주제에 관심 갖기 시작했고, 여기서 비롯된 의문을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종교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불가해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해명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여러 종교가 내놓는 설명이 맞건 그르건, 삶의 불안을 가라앉히는데 유효하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그 설명을 받아들여 이상으로 삼았다. 이 같은 설명은 고대엔 샤머니즘처럼 현실에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어느샌가 기독교처럼 상상에 의해서만 가능한 창조물에 기대기 시작했다.(5) 포이어바흐는 이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간은 감성적이고 물리적인 것 이외의 다른 현실이나 실존에 대하여 상상이나 예감을 갖고 있지 않다. 종교도 그러므로 종교적 이상이 사유존재이거나 도덕적인 본질에 불과함에도 그것을 동시에 물리적인 본질로서 상상한다. 종교는 인간의 의미에서 최고의 본질 또는 전형을 최초의 본질로 만든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그것을 모든 다른 감성적이고 육체적인 본질이 발생하고 다른 모든 본질의 존재가 의존하는 본질로 만든다. 이것이 바로 종교의 난센스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인간의 목적을 세계의 시원으로, 자연의 원리로 만든다.”(6)

 

포이어바흐의 말마따나 사람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 외에 어떤 것도 상상하지 못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가장 허무맹랑한 상상의 산물인 종교적 이상을 실재하는 것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서 종교는 다른 것에 앞선 제1의 이상이란 지위를 차지하였고, 그에 의하면 이 모든 사태는 전적으로 사람 내면에 자리 잡은 허영심 때문이다.(7) 특히 지난 전쟁을 돌이켜보면, 그 원인은 갑자기 거칠어진 기후나 급격히 떨어진 농업생산량 그리고 속수무책인 전염병과 같이 주변 환경에 있을지라도, 국가나 민족 그리고 이념 간 갈등을 증폭하는 건 결국 자신이 가진 이상이 옳다고 믿는 허영심이었다. 그중에 종교로 인해 촉발된 갈등은 가장 봉합하기 어려운, 얽히고설킨 문제로 정평이 나 있다. 예를 들어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 간 대립은 오랫동안 지속된 갈등 중 하나다. 


갈등이 생겨났던 이유야 어떠하든, 역사상 각축을 벌였던 여러 종교는 다른 국가나 민족까지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심대하게 영향 끼쳤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만큼 종교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상으로써 먼저 고려되는 문화적 요소였다. 아니, 종교가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상에서, 사람들은 선택을 강제당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즉 특정 종교가 지배적인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의문을 느껴볼 겨를도 없이, 의무에 입각하여 자신 삶의 기준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계속될 것만 같았던 종교의 영향력은, 현대문명이 발아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균열이 발생했다.





5.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강대석 옮김, 한길사, 2006, 363쪽. “이교도들은 인간을 피부와 머리카락까지 신격화했다. 이에 반해 기독교도들은 인간의 정신적이고 심정적인 본질만을 신격화했다. 기독교도들은 모든 감성적 특성, 정열, 욕구를 그들의 신에서 제거한다. (…)”

6.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강대석 옮김, 한길사, 2006, 366쪽.

7.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강대석 옮김, 한길사, 2006, 366쪽. “인간은 자신의 이상에 종속되었음을 느끼고 또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목적 없이 자신은 무이며 그와 함께 삶의 목적과 근거가 상실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세계 일반이 이러한 원형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무라고 믿는다. 종교적 이상에 제1의 자리를 부여하고 모든 다른 것을 제물로 바쳐 경배심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허영심이고, 근세의 언어를 사용하면 낭만주의이다. 이 허영심은 국가의 화려한 제복 속에서만이 아니라 종교의 겸허한 승려복이나 사제복 속에서도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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