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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Oct 06. 2024

이상과 현실 사이 (2)

문화 논리

약 6만 년 전쯤 사람은 유럽이나 아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거주하던 네안데르탈인 혹은 다른 자매 종과 다툼을 피할 수 없었던 듯하다. 그 결과 지구엔 사람 이외에 다른 인류는 없다는 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지구에서 자매 종이 모두 멸종하자, 사람은 같은 사람끼리 영원할 것만 같은 문화 경쟁에 돌입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이 이상적이라 주장하면서 첨예하게 갈등하고, 심각하게 대립하며, 서로 죽이고 죽는 학살을 반복했다.


어째서 사람이 문화를 둘러싸고 잔혹한 역사를 그려왔는지 말하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문화적 요소로써 언어나 예술 그리고 종교는 모두 어떤 논리적 구조를 지녔다는 점이다. 언어는 문법이 있기에 논리적이다 치더라도, 예술이나 종교는 논리와 멀어 보일 수 있다. 허나 모든 문화적 요소는 같은 문화권의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낸 고유한 시각을 담았기에 논리적일 수밖에 없다. 선사예술을 연구한 엠마누엘 아나티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사시대 인류에겐 ‘추상화’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회화 예술은 제아무리 자연스러운 경우라 해도 항상 추상적이다. 왜냐하면 그 그림들은 시각적, 상징적 혹은 의식적으로 추려 낸 한 실체의 단면만을 표현하고, 생각으로 옮기거나 혹은 형상화시킨, 결과적으로 그 실체를 변화시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3) 


아나티는 회화예술에 대해서 말했지만, 이는 다른 문화적 요소에도 확장할 수 있다. 왜냐면 기호나 상징은 예술 뿐 아니라 언어나 종교에도 필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동물은 모든 걸 알 수 없기에, 기호나 상징을 이용해 현실을 이해할 만한 논리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곧 언어를 비롯하여 예술이나 종교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곧 특정 문화권에서 기호나 상징이 무엇을 뜻하는지, 또 논리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학습했을 때에야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특별한 단서가 있지 않은 이상 특정 문화권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4) 


물론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인접하거나 멀리 떨어진 문화권과도 끊임없이 교류해 왔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매우 큰 단절이 발생하지 않는 한 상대 문화권의 논리에 완전히 무지한 상황은 흔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서양과 동양의 상인들은 실크로드가 열렸던 기간 동안 그 먼 거리를 왕래하며 문화적 요소가 담긴 상품을 거래했다. 그러나 역사엔 문화적 단절에 따른 갑작스러운 만남이 언제나 있었고, 이런 만남은 특히 유럽 사람들이 현대문명을 들고 대서양과 인도양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며 생겨났다. 잘 알려졌다시피 만남의 결과는 참혹했다. 아프리카에 살던 부족민 수천 만 명은 노예로 팔려갔으며, 아메리카에 살던 원주민은 천연두와 학살에 쓸려나갔고, 특히 호주 남단의 섬 태즈메이니아에 살던 원주민은 완전히 멸족해 버렸다. 유럽 사람들에겐 이상이었던 현대문명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겐 재앙을 초래했던 것이다.




3. 엠마누엘 아나티, 《예술의 기원》, 이승재 옮김, 바다출판사, 2008, 125쪽.

4. 엠마누엘 아나티, 《예술의 기원》, 이승재 옮김, 바다출판사, 2008, 125-126쪽. “종합적 사고라는 것은 매번 모든 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특유의 환경과 관련이 있거나 정확히 내용을 모를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는 예술가가 어떤 형태와 어떤 기호―원이나 각두, 십자가 모양, 선 혹은 점―등을 통해 특정 형태나 개념의 본질적인 부분을 표현하고자 했을 때, 동일 문화권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다른 단서나 설명 없이는 그 문양이나 기호 자체가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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