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내 안에 머무는 것

서평 슬픈 카페의 노래 - 카슨 매컬러스

by 어제만난사람



세계는 나를 비추는 커다란 거울이며, 타인은 그 거울의 작은 파편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라는 자아를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내게 인식된다. 결국 세상은 나의 일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외부 세계나 타인은 나라는 존재를 일깨우고, 때로는 욕망을 자극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안에 원래부터 없던 것은 아무리 외부에서 자극을 주어도 반응하지 않는다.
반면,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거나, 의식적으로 억눌러 온 감정과 생각은 자극을 받으면 되살아나고, 피어날 수 있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고, 마치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 모두 그러한 변화를 겪는다.


돈만 밝히고 남자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던 철혈녀 미스 어밀리어가 꼽추 라이먼을 사랑하자 그 마을에는 카페가 생기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묘한 긍지가 피어올랐다. 어밀리어가 라이먼의 사랑을 완전히 잃고 나자 그녀는 자신이 가장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 소시지를 만들어 팔고, 농사를 짓고, 마을 의사를 자처했던 일까지도 내던져 버렸다.

마을의 난봉꾼이던 마빈 메이시도 미스 어밀리어를 사랑하면서 누구보다 성실한 청년으로 변모했으나, 결혼 후 그녀에게 버림받고는 이전보다 더 고약한 악당이 되었다.

마빈을 사랑하게 된 라이먼은 기꺼이 그와 같은 범죄에 동참하고자 하고, 그가 어밀리어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작가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사랑받기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야말로 자기 내면의 세계를 일깨우는 이라고도 했다.

연예인이나 SNS의 유명인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오늘날에 이 말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모두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시대, 대중들의 찬사나 관심을 얻기 위해서라면, 높은 조회수와 좋아요를 위해서라면, 영혼까지도 팔 수 있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여러 이성에게 구애받는 사람이 승리자처럼 보이는 짝사랑의 공식은 드라마의 단골 주제이다. 21세기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숭배받고 싶고, 사랑의 대상이 되고 싶지, 짝사랑 따위나 하고 싶진 않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목받으며 숭배받는 대상으로서의 사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소유욕의 변형된 한 형태,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나타나는 병증에 가깝다.


이 책의 작가 관점에서 보자면 사랑의 대상은 외부 세계의 자극원일뿐이고, 사랑 그 자체는 나의 안에 존재해 온, 그러나 오랫동안 잊혔거나 미처 인식되지 못했던 나의 일부분이다. 사랑의 감정이 온전히 그의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외부의 대상이 사라져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을 주는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하라.'라고 한 것이다.


내면에서 피어난 사랑이 외부로 튀어나가 바깥의 대상에게 머물고자 하면, 사랑은 세상 모든 것 중 가장 끔찍한 비극을 예정한다. 나의 감정은 내게 종속될 수 없고 외부 대상의 노예가 되며, 대상이 나를 떠나는 순간 내 안에서 피어난 사랑 또한 죽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대상에 대한 소유와 집착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내가 사랑할 때 느낀 그 감정, 두근거림과, 헌신과, 기꺼운 희생을 감내하게 하는 그 모든 아름다운 감정들은 외부 자극으로 일깨워진 것일지라도 처음부터 내게 있던 것일 뿐, 대상이 내게 선물한 것이 아니다.

개인이 경험한 사랑의 감정은 그의 내면에 오래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며 온전히 자신의 것이기에, 대상이 사라져도 허물어지지 않을 수 있다.


어밀리어도, 라이언도, 마빈도, 이 감정이 타인 즉,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그 대상을 따라서 번영과 파멸을 오갔다. '사랑하는 이의 사랑'은 자신의 내면을 충만하게 만드는 이상야릇하고도 완벽한 세상을 이룰 수 있는 재료이며 대상을 '통해' 일깨워진 것일 뿐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작가가 역설적으로 전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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