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사춘기 : 17살의 나

2022.11월

by 어제만난사람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그렇게 되라고, 그것이 자랑이라 배웠다. 당연하지만 부모들은 자식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법이다.

우리 부모님은 공부를 잘하는 것을 최고로 쳤는데, 어린 시절 내게 암기는 재미있고 쉬운 일이었다. 나는 노력하지 않고 따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맘껏 누렸다. 그렇지만 자랄수록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환상과 동화로 가득 차 있던 내 세계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했던 능력들은 점점 초라해지고 작아져 더 이상 특출 난 것이 되지 못했다.


더 견디라고, 더 열심히 하라고, 평생을 그렇게 애쓰며 사는 게 인생인 거라고, 세상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지만, 17세의 나는 그저 다 싫을 뿐이었다. 노력하면 된다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벼락치기로는 더 이상 성적이 나오지 않는 고등학교의 중간고사를 겪고 나니,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때까지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 그나마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

노력하면 되는데 왜 넌 그것도 못해, 난 정말 이런 내가 싫어. 친구 사귀는 건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좀 더 예뻐졌으면 좋겠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 환경에도 보탬 하나 안 되는 인간 종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으려나.

그때 쓴 글이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중에는 ''17살 때 나는 그렇게 유치한 고민을 했었어'라고 웃고 있을 어른이 된 나'를 혐오하며 저주하는 글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른이 된 내가 17살의 나를 꼬맹이 취급하지 않기를 바랐다. 과거의 나라도 소중하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리고 내가 아는 어른 중에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어른이 되기 전에 죽고 싶었다. 죽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죽음이 나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교통사고가 났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고, 몇 번인가 병에 걸려도 잘 살아남았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 고통이라는 필수 관문이 있는 한, 절대로 먼저 그쪽으로 방향을 틀고 싶지 않았다. 아픈 건 너무 싫으니까. 그리고 굳이 죽을 생각이라면 죽기 전에 온갖 금기된 것들을 다 해 보고, 갈 수 없는 곳을 다 가보고, 제일 덜 아픈 방법으로 죽어야 후련할 것 같았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과거의 나를 다시 마주한다.

나와 다르게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정말 자기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자랄 거라 기대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시절의 나랑 똑같은 불행을 끌어안고, 나보다 더 무기력한 모습을 한 17살의 딸.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가 왜? 네가 뭐가 부족해서?

다리가 까맣게 멍들도록 때리는 아버지가 있니, 학원을 뺑뺑 돌리며 공부를 시켰니, 좋아하는 물고기도 키웠고, 고양이도 있잖아. 그 시절의 나처럼 여드름 폭탄을 맞은 피부를 가진 것도 아니고, 뱅글뱅글 안경을 써야 될 정도로 눈이 나쁘지도 않은데. 뭐, 왜, 뭐, 도대체 왜?


딸이 우울하게 늘어져서 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났다. 그러다가 아이가 유일하게 하나 다니던 학원을 마치고 자정이 가깝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던 날, 슬리퍼를 신고 딸을 찾으러 정신없이 거리를 뛰어다니고서야 알았다. 내가 갖고 싶은 걸 네게 주었다고 해서, 너의 짐이 덜어지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너는 나와 몹시도 다른 사람이라는 걸.


정신과를 예약하고 상담실을 다녔다. 치료를 시작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타일러 봤지만, 나는 너무 자주 무너졌다.

견디는 것은 내 전공이 아니었다. 나는 노력을 하기 싫어서 뭐든 포기가 빨랐고, 자기 합리화를 통해 실패를 쉽게 수용했다. 아쉬움이 남아도 그건 여우의 신포도와 같은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딸이 스스로의 감옥을 걸어 나올 때까지 그저 지켜보고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한 번씩 북받친 감정이 넘치고 절망이 휘감을 때면, 말로 칼을 만들어 아이에게 갖다 꽂는 짓을 했다.


세상이 점점 미워지고 있었다. 1년 새에 흰머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지만 마음속의 나는 그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되감겨 17살 언저리에 도달해 버렸다.

세상따윈 없어져 버려라! 좋은 거라곤 하나도 없어! 다 엿 먹어라. 안 아프고 죽으면 좋겠다...!

그때의 그 감정들이랑 별반 다르지 않은 끔찍한 기분으로 눈을 뜨고, 대충 괜찮은 척 생활을 지속하기를 1년, 2년... 이젠 하루를 장악한 감정들이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 뿐인 듯하다.

나아진 것 없이 실패만 한 것 같은 어른이 되어 있네. 17살의 나는 이 나이쯤 된 나라면 좀 더 무쇠껍질을 둘러싼 듯 단단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야 살아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자라지 못한 것일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나는, 17살의 나를 우습게 보는 어른이 될 수는 없었구나.

나이가 든다고 해서 아는 게 많아지는 게 아니라, 아는 척하는 게 많아지는 것뿐이었던 거였어.

나는 기다리는 법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통해서 겨우 배우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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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치료를 받은 지 1년이 넘은 시기였고, '슬픈 카페의 노래'는 이 무렵에 읽었던 책이었다.

사랑을 돌려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써 내 안이 더 온전해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막연히 배워가고 있던 시기였는데 책을 읽을 때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러한 생각들이 글을 쓰면서 점점 뚜렷하게 떠오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 해 겨울 고3을 앞둔 딸과 함께 필리핀의 바다로 여행을 떠났고, 우린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땄다. 예약해 두었던 호핑투어는 감기에, 패러세일링의 멀미까지 겹쳐,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던 여행이었지만, 여행 이후 딸은 우울증 약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보다 조금 밝아졌다고 하나, 아주 조금이지만 뭔가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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