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1~4 - 이영도, 한계선을 넘다(크래프톤)
크래프톤에서 화보집을 발간한 걸 보고 나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밀리의 서재에 오디오북이 있어서 여행 때 들으면서 가기도 좋았고.
『눈물을 마시는 새』는 드래곤 라자보다 가독성이 좋았고, 설정도 기존 판타지에서 끌어온 게 아닌 작가가 창조해 낸 세계라 매력적이다.
정교하게 설계된 4개 종족과 그들의 상호작용, 종족마다 부여된 신의 선물, 긴장감 있게 전개되는 서사 구조까지.
동양적 감수성과 철학을 바탕으로 이만큼 완성도 있는 판타지 소설은 드물것 같다.
분량이 꽤 있긴 해도 재미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다.
참신할 뿐 아니라 문장의 힘도 드래곤 라자때 보다 훨씬 나았다.
재미 있었으나 리뷰에서는 아쉬운 점만 언급하려고 한다. 스포포함 됨.
케이건 드라카의 나가에 대한 증오는 작가가 여러 장면에서 정성들여 묘사하고 있다. 얼마나 잔혹하게 나가를 죽이며, 얼마나 끔찍하게 그들의 신체를 먹어치우는지를. 그런 그도 요스비를 만나면서 흔들리고, 륜과 사모 페이 남매를 만난 여정에서 조금씩 변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그의 증오를 흔들만큼은 아니었다.
화신으로 각성한 케이건은 나가를 몰살시키려고 한다. 어떤 노력도 소용이 없던 그 순간, 인간의 신이 남긴 선물이 나늬였다는 사실이 그를 진정시킨다.
이게 뭐야 ?
앞에서 켜켜이 쌓아온 무게가 갑자기 후두둑 무너지면서 김이 빠져버리는, 감정선보다 설정이 앞서는 전개이다.
두억시니 정신체가 된 폭포가 자신을 '신의 찌꺼기'라 인식하고 기쁘게 소멸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자아를 가진 존재는 (자기 조상이 천국에 갔든 어쨌든) 자아소멸에 대한 거부가 기본 옵션 아닌가?
내 조상이 천국에 갔다고 나의 자아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인간을 상상해보라. 자신이 남겨진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폭포를 더욱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다. 두억시니는 자아가 없지만, 적어도 폭포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 폭포가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설정은, 감정이나 철학의 설득이 없이 그려저 조악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각 종족이 받은 신의 선물 설정 역시 균형이 아쉽다.
도깨비는 신과 동일한 힘을 받고, 레콘은 절대 부서지지 않는 무기를 받으며, 나가는 파괴적인 마법(신명)을 얻는다.
그런데 인간에게 주어진 건 ‘나늬’라는 존재 한 명이다.
한 명의 인간이 전체 인간을 대표하는 설정은 개개인으로서 개성적인 인간을 지워버리는 고약한 신의 종족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이 나늬라는 존재의 기능이나 설득력은 끝까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그토록 거대한 힘이 하나의 인간에게 존재하게 된다면, 모두가 사랑하는 그녀를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두고 싶어 하거나, 그 힘을 나눠 가지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미녀든 추녀든 한 여자를 두고 서로 싸우는 인간들을 추잡함을 본다면, 선물이라기 보단 저주라고 말하고 싶어질 거다.
데오니 달비 처럼 미모가 아니라 사랑스러움이란 게 있다라고 인식하게 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케이건의 아내도 나늬 였기 때문이다. 모든 종족에게 사랑스럽게 보이는 나늬라면, 30명이나 되는 나가 중 아무도 그녀를 먹어치우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게 된다.
데오니 달비는 포로로 끌려갔음에도 나가와 인간 모두에게 대접받고 사랑받는 인물이라는 설명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 사랑스러움은 작가가 끊임없이 그녀를 사랑스럽다고 주입해서 그런거지, 독자 입장에서 진흙이건 맨 땅이건 미친듯 넘어지고 초초초 긍정녀인 달비에게 생기와 활달함은 느낄지언정 사랑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느끼기는 어렵다. 나는 작가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달비가 사랑스럽구나~ 하고 인식할 뿐이라, 결과적으로 나늬는 ‘둥둥 떠다니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젠더 재현 역시 균형이 아쉽다.
도깨비 여성은 거의 묘사되지 않고, 레콘 여성은 일부다처제 구조 안에서 존재한다.
나가 여성은 남성과 역전된 관계로 인해 강조되지만, 그래도 그나마 특징적인 면모가 있고 상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도깨비 여성은 외형적 상상조차 어렵다.
세계관은 넓고 풍부하지만, 성역할과 감정의 다양성은 제한되어 있다.
아쉬운 점들을 길게 썼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는 여전히 흥미롭고 흡입력 있는 소설이다.
아라짓어를 고대어로 차용한 점, 나가에 대한 케이건 드라카의 시선이 이순신이 왜에 대한 시선과 겹치는 점 등, 한국적인 정서가 곳곳에 깔려있고, 가독성도 좋고, 각 종족의 논리와 세계는 설득력 있게 구성되어 있다.
즐거움을 위해서 읽는 책이므로, 개연성의 구멍보다는 읽는 재미가 훨씬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