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스케일 속 비어 있는 인간성

삼체 - 류츠신

by 어제만난사람





1줄 간략 요약 : 외계인의 침공을 피하기 위한 지구인의 다양한 모색. 갖가지 노력에 비해 결과는 미미하지만, 극소수는 살아남아 우주로 뻗어나감.



1권은 재미있게 읽었다. '삼체'라고 명명된 4광년 거리의 외계 문명이 자신들의 행성이 머지않아 태양에 빨려 들어가 멸망할 것을 알게 된다. 절망한 그들에게 지구에서 보낸 전파가 도착하고, 최초 수신자는 답신하지 말라고 답을 보낸다. 답을 하게 되면 지구의 위치가 노출되어 우리 문명이 너희를 침공할 것이라고.


그러나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눈앞에서 물리학 교수였던 아버지가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맞아죽는 것을 보았던, 공산국가의 중국에서의 성장기를 거치며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낀 한 여자 과학자가 삼체의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지구의 좌표를 삼체 문명에 전송한다.



삼체 행성에 대한 묘사는 창의적이었고, 중국의 문화 혁명 과정에 대한 표현도 좋았다. 과학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아는 바가 매우 빈약해서 초끈 이론과 양자 얽힘에 대한 개념을 상상력을 발휘해서 집어넣었구나 이 정도? (그런데 나중에 남편에게 몇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을 물어봤더니 도대체 그 소설이 왜 베스트셀러냐며 어처구니없어했다. 이건 상상력을 발휘해 쓴 SF 소설이 아니라 그냥 판타지 소설이라나. 내가 남편에게 처음 물어본 게 저광속 블랙홀에 대한 거였는데, 물리학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이 쓴 거 아니냐며 너무 정색하면서 말도 안 된다고 했다. )



과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철학적인 면, 스토리 구성의 면, 작가의 사상적인 면에서도 할 말이 많아서, 과학 고증을 시도하려는 남편의 이야기를 더 적지는 않겠다.

양자 얽힘에 대해서도 작가가 너무 무지하다고 하였는데, 남편과 비슷한 논지로 분석한 리뷰를 찾았다 : 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23100408&series_page=2 <-- 오류인지 이 링크를 클릭하면 리뷰로 바로 이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수정하긴 했지만 혹시 안되면 댓글의 링크 클릭하면 바로 이동이 된다.

과학적인 부분의 오류는 이 리뷰 시리즈가 작심하고 제대로 비판해 주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연재]류츠신 SF, 『삼체』의 치명적 오류들(1~5)

1. 삼체세계에는 삼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2. 태양에는 항성간 통신을 위해 전파를 증폭할 수 있는 특수한 층이 있는가?

3. 삼체세계의 만능컴퓨터, 지자(智子)

4. 빈곤한 인문과학적 지식과 상상력

5. 책임감 있는 작가는 자신의 세계관 설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



우주선이 대규모로 지구로 향하고, 한참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지구. 연합 회의에서는 전 인류 중 딱 4명만 뽑아서 그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고 지구를 지킬 방안을 모색하도록 한다. 면벽자 프로그램.


아.. 이 조악한 상상력이라니. 너무 유치해서 이 부분에서 한 번 포기할 뻔.


지구의 인구가 80억인데 4명에게 내 삶을 맡기자고? 공산국가인 중국인은 '네, 알겠어요.' 하고 순순히 따르려는가 모르겠지만 인구 5천만 밖에 안되는 한국에서도 최소 50만 명쯤은 '이게 무슨 개뼉다구같은 소리냐, 영웅 납셨네. 내가 해도 그보단 잘할 거다'라며 난리 법석이 날 거다. 자유 민주주의국가의 사고관과 공산국가의 사고관이 이렇게나 차이가 큰 걸까?



소설 속에서는 영국인 뇌과학자, 미국인 장군, 베네수엘라 대통령, 평범한 중국인 과학자 4명이 선정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4명 모두 '개인으로서의 인간', '인간의 존엄'같은 자유주의적 개념에 대해서는 개미 똥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기이함을 보인다.

나 혼자 행복한 삶을 살겠다며 문제 해결 의지가 없던 중국인 뤄지가 개중엔 가장 현명한 편으로 묘사되나, 넷 다 한 거푸집에서 찍어 나온 캐릭터처럼 '임무'에 집중해서 '본질'( 인류를 구한다.- 인류를 구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생명도 허투루 여기지 않겠다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불가피하여 누군가 희생을 하게 되는 경우라도 그 희생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을 허무할 정도로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냥 차라리 넷 다 중국인을 뽑았다고 설정하지 그랬냐고.

개인의 존엄이나 자유란 걸 중국인들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에는 작가의 사고와, 철학과, 가치관이 녹아들어 가 있고, 오직 작가만이 소설 속의 다양한 캐릭터를 만든다.

그래도 정말로 잘 쓴 소설은 각각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정당성을 가지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정형화되고 고정된 클리셰 같은 캐릭터들도 때로는 자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으나, 삼체에 이런 인물은 없었다.


특히 여주인공인 청신은 - 똑똑하고 예쁘고 착한 과학자라는 설정이 작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사건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이 소설에서는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결단력 내리는 캐릭터가 긍정적 인물로 묘사되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 일을 망쳐버리고 어쩔 줄 몰라 그저 수시로 동면하기를 선택하는 수동적이고 무능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삼체 3권에 이르면 지구는 멸망하고, 오직 2명의 젊은 여자만 탈출해서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다.

오래전 지구를 떠났던 극 소수의 지구인들 중 두 명의 남자가 이 두 사람과 만난다. 청신은 자기를 사랑해서 별을 선물했던 윈톈밍이라는 남자와 재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도, 그도, 서로를 그리워했고 오랫동안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청신이 탄 우주선이 착륙 직전 저광속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서 1800만 년의 시간이 어긋나 만날 수 없게 된다.


이쯤서 엔딩으로 끝냈어도 그렇게 중구난방이다 싶진 않았을 텐데, 사랑의 작대기가 어긋난 두 쌍의 커플이 사랑하지 않는 이성이랑 행복하게 잘 살았다가 엔딩이다.

작가가 인공적으로 만든 소우주와 대우주 개념을 써먹고 싶어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근데 윈톈밍이랑 둘이 살아남게 해야지. 독자의 카타르시스는 어떡하고 소설 중간에 잠깐 나왔던 뜬금포 과학자랑 둘이 살게 하는 거냐.

여자의 심리에 대해 유난히 모르는 거 같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소설가라는 사람이 애초에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없는 거였다. 별을 선물하고, 자기 대신 희생했고, 그토록 그리웠던 사람과 엇갈렸는데 별 고민도 없이 옆에 있는 남자랑 행복하게 잘 살았다가 가능하냐고. 물론 현실에서 이런 게 가능할 수도 있기는 하지. 하지만 현실도 개연성이란 게 있거든? 하물며 소설에서 아무 설명도 없이 이렇게 됐다 한 줄 묘사로 끝나다니, 개연성 어디 갔어.


개연성 파괴 엔딩은 차치하고 봐도,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묘사가 너무 많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폭압적이고 잔혹한 세계관이 소설 전반에 깔려있었다. 암흑의 숲과 같은 사상은 소설 전체를 보았을 때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틀어 둔 장치라기 보다는 창조적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이 보는 세계관에는 선한 의지와 협력으로 상생하는 우주는 없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중국이 중국인들을 어떻게 세뇌하고 억압하는지 드러내 보여준다.


오보였지만 지구가 곧 광자에 의해 파괴된다는 소식을 접한 부유층 인사들이 자기들의 개인 우주선을 타고 도망가는 장면에서, 굳이 어린아이들 에피소드를 넣은 이유가 뭘까?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이 타고 갈 우주선이 벌써 출발해 버렸어요!!'라며 청신과 AA에게 아이들을 좀 태우고 가 달라고 부탁했을 때 청신은 망설이고 AA는 3명 자리밖에 없다며 과학, 수학 문제를 맞힌 3명만 태운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한국의 경쟁문화도 이런 수준이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너, 타.', '너는 안돼.', 하는 AA의 대사에선 역겨움이 치밀었다.

이게 자기비판적인 의도로 작가가 삽입한 에피소드였나. 중국이란 나라는 인간성보다 효율만을 따지는 곳이란 걸 중국 독자에게 일깨워 주기 위한 장치였을까? 이 에피소드는 소설에서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다. 갑작스러운 멸망 앞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동물적으로 변하는지 묘사는 아이들이 등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했으니까.


소설 속 여러 인물들 중 작가가 '영웅' 과 비슷하게 묘사했던 장베이하이나 웨이드의 결정은 '냉혹하지만 합리적이다. 대다수를 위해서는 더 현명한 결정'이라고 묘사되지만 이것은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즘이다.

이런 식의 사고관은 오다 노부나가나 은하영웅전설 같은 일본 소설을 읽을 때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는데, 역사의 어떤 순간, 혹은 사건의 어떤 면에서는 맞는 경우도 있기에, 삶을 단순하게 정의하고 싶은 사람들을 손쉽게 매혹시킨다. 그러나 긴 시간, 더 높은 사유가 가능한 사회에서 보면 특정한 혼란기에 잠시 적용 가능 할뿐인 원시적인 이념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문명이 발전할수록 파괴를 위한 행동은 감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주의 고도로 발달한 문명들이 여전히 원시적인 전쟁으로 자원을 소모한다는 암흑의 숲 사고관도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악은 그 자체의 파멸적인 성질로 인해 결국 스스로 멸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생명이 진화하며 생존을 갈망하는 한, 물리학에만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지성체의 문명 또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유사하게 진화해 나갈 것이다.


실제로 작가도 '우리나 삼체의 진화에서 환경적으로 차이가 있긴 해도 그들도 감정을 느끼고, 과학을 발전시켰고, 사상이 있고 사랑도 한다, 우주인이지만 우리가 완전히 다르진 않았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암흑의 숲이라는 설정에서 나는 중국인이 현재를 바라보는 정도의 사상적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생존에 대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갈망, 죽이지 않으면 죽는 세계에 던져진 듯한 두려움이 소설 전반에 깊게 깔려 있다.


물론 우주 전체의 어떤 시공간에서는 침략적인 종족이 주변을 잠식하며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미사일을 먼저 쏘는 것보다는 불안하더라도 신뢰관계를 구축하면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윈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공멸을 위한 우주. 이것이 작가의 우주관이었지만 나는 이것에 완전히 반대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수록 힘들었었다.

플롯의 구성 또한 90년대 말 2000년대 초의 한국 영화 느낌 즉, 할리우드의 영화에서 뭔가 잔뜩 가져왔고 그리고 우리만의 것을 거기에 가미해서 새로운 변화가 보이기는 하는데, 참신하면서도 촌스럽다. 최근의 중국 애니메이션 몇 편을 유튜브에서 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기술은 이미 미국에 맞먹거나 더 나은 수준이라 봐도 좋을 만큼 발전했으며, 감성을 건드리는 요소도 분명히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이르면 '꽝'이라고 적힌 포천 쿠키같이 비어있다. 그것이 뭔지 정확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철학의 깊이, 인간의 내면의 깊이에 대한 성찰이 내용에서 느껴지는 게 없어서다. 물론 미국도, 한국도, 일본도 이런 작품은 많다. 그래도 한국은 가끔 봉준호 같은 감독이 나오긴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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