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대상

생의 이면 -이승우

by 어제만난사람



49912066618.20240824073231.jpg



섬세한 묘사와 필력에 매료되었다. 몇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표현들 하나하나에 마음의 한편이 예리하게 베이는 듯하다. 같은 작가의 '사랑의 생애'도 읽고 있는 중인데, 날카롭게 벼린 칼처럼 가슴을 후벼 파는 문장이 몇 페이지마다 나와서 숨을 고르고 읽게 된다.


그럼에도 고교 단편선, 혹은 교과서에 실리던 일제 강점기 소설에서 나는 특유의 한국적인 무거움이 나를 짓눌렀다. 그런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감탄스러운 경이와 함께 부담스러운 느낌이 동시에 든다고 해야 하나. 어쩐지 글의 수려함만큼이나 견딜 수 없는 슬픔, 혹은 분노나 한이 그 안에 있어서, 내 발목을 휘감아 어딘가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한강의 소설도 읽을 때도 그랬으니까, 이런 느낌을 주는 작가는 정말 좋은 작가가 맞지.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박부길이 자신의 연인에게서 자기 자신의 왜곡된 욕망만을 투사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종단은 어떤 눈으로 그를 보았을까,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이별했을까. 왜 단 한 번의 전화조차도 거절했을까.

남성의 소설 속에서 자주 여성들은 성녀가 되거나 창녀가 된다. 그녀를 모르기에 자기의 욕망의 투사물로서의 여성을 빚는 것이다.

현실의 남자들은 여성에 대해서 이 정도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그들도 연애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상대의 본질에 대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적당히 모른 채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저냥 살아지는 걸까?

그러나 소설에서 보자면, 종단에 대한 묘사가 그 시대의 전형적인, 적당히 교육받고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한국 여성이라는 게 옥의 티 같다. 다른 묘사들은 수준급인데, 유독 그녀에 대한 부분은 뭔가... 3D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한 2D 판잣집처럼.


나는 그녀의 이면이 분명 그렇게 숭고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현실의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삶을 사는 경우가 많지만, 이 소설의 세계관이라면 인간의 내면은 훨씬 다층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어야 마땅해 보인다. 실제로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의 내면도 그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할 뿐, 서로 비슷하게 성스럽고, 비슷하게 타락해 있으므로.


종단의 성격이 유순하고 선량할 것이므로, 나보다는 온화한 버전으로 그녀의 시선을 그려 봤다.




너의 글들을 읽었어. 네 글 속에서 우리가 알던 너와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내 마음은 과거로 돌아가. 그리고 상실의 아픔과 자책을 연소시키며 글을 써 내려가는 젊은 너를 상상하게 돼. 물론 너도 이제는 불혹을 훌쩍 넘겼을 테니까 더 이상은 젊지 않겠지. 그래도 내가 떠올리는 너는 언제나 20대의 섬세하고 상처받은 모습이야.


오랫동안 나는, 생물학적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자란 너와 내가, 하나님의 안배 속에서 만났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너와 가까워질수록 난, 길 잃은 어린양을 포기하지 않은 주님처럼,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너를 도울 수 있기를 기도했었어.

네가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어도 네 불안정함과 연약함은 시리도록 투명했으니 난관이 있을 줄은 알았어. 그러나 나는 참고 기다리는 걸 잘하는 사람이었고, 설령 네 삶의 시련이 나에게도 몰아칠지라도 먼저 너를 떠날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지.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어리석은 열정은 너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야. 나이가 좀 더 많았다고 해도 나 역시 제멋대로 사랑을 해석하고 있었던 거야. 너에게서 나의 빈자리를 보면 그것을 채우기 급급해서, 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어. 너의 어둠과 나의 그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식 속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어.


내겐 평생 안식처라고 믿었던 곳이 교회고 기독교였지만, 실상 나와 내 어머니는 연민을 잘 포장한 교회의 친절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거야. 나는 그 부드러운 동정을 평생 느끼며 살아왔지. 누구도 직접적으로 말한 적 없었고, 나 또한 내 삶을 한 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쩐지 그날, 네가 나를 창녀라 손가락질하고, 신학교의 학생들이 나를 가엾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그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로부터 얼마나 달아나고 싶었는지,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깨어지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너는 내가 속한 세계의 바깥사람이었어. 그런 너를 사랑한 나는, 어쩌면 내 세계 바깥을 꿈꿨던 것은 아닐까.


내가 정말로 주님의 신실한 종이 었다면, 너를 가엾게 여길 수는 있어도 너를 사랑하지는 않았을 거야.

만약 내가 조금 덜 신실했다면, 너를 사랑했기에 끝까지 네 곁을 지켰을 거야.

하지만 나는 굴절된 시선으로 널 바라보며 사랑했고, 환상이 깨어지자마자 너를 저버렸어.


현실을 직시하자, 네 상처들이 비로소 얼마나 커다란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어. 나는 미래를 계산하기 시작했지. 네가 나에게 한 그 모든 행동들은 반복이 될 거라는 것, 그럴 때마다 넌 진심으로 울면서 내 발 앞에서 참회할 거야. 상황은 점점 나빠지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이 보였어.


언젠가 가정을 꾸리고, 함께 아이를 키우게 될 거란 막연한 기대는, '박부길'이란 사람이 그것을 견딜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어. 너는 그렇게 소박한 삶 속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거든. 네가 야망이 큰 남자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기에.


남자가 보기에 아무리 착한 여자라도, 여자의 내면에는 '사랑과 현실을 저울질하는 개츠비의 데이지'가 살고 있어.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내 안의 데이지는 저울질이 끝나자 단숨에 이별을 결정해 버렸지. 나조차도 내가 이토록 냉정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어. 그러니 너는 나를 끝끝내 몰랐을 수밖에.


네 안에 살고 있는 종단이라는 여자는 60년대와 70년대 어디쯤 이상적인 아가씨의 모습으로, 너의 뮤즈로 남아있겠지만, 실제로 그녀는 계산을 끝낸 뒤 깨끗하게 마음을 정리한 차가운 여자인 거야.

우리의 이별에 대한 책임을 너 혼자만 짊어지는 듯한 글을 보았을 때, 내가 널 몰랐던 것만큼이나 너도 나를 몰랐구나 싶더라. 네 안에 숱한 층의 자아가 있는데, 나 역시 그렇지 않았겠니.


나는 교회 안에서 자란 것뿐, 성스러운 무언가를 타고난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지금의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종교에 헌신하는 것의 어려움이라든지, 교회 역시 사회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만큼 약삭빨라졌어. 아니, 사실 나는 너를 떠났을 때 이미 충분히 약은 여자였어. 네가 얼마나 무너질지 알면서도 나는 뒤돌아 보지 않았으니까.


그 무렵 신문에 실리는 사건 사고란에 헤어진 애인을 죽이고 동반 자살했다거나 하는 내용이 보이면 어머니는 보란 듯이 '연애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않느냐.'라며 타박하곤 했어. 정말로 난, 네가 나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내 눈앞에서 분신자살은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 널 만나주면 나를 낚아채서 어딘가로 끌고 갈 것 같았고, 내가 너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하면 또다시 나를 밀어 넘어뜨리고, 내게 욕설을 퍼부을 것 같았어. 나는 네가 싫고, 무섭고, 혐오스러웠어. 너를 사랑한 적이 있는 나 자신도 증오했을 만큼.

광기에 사로잡힌 남자를 상처 많은 여린 사람으로 착각했던 형편없는 내 안목도 용서가 되지 않았어.


우습지 않니. 너를 하나님께 이끌 힘을 달라던 희생적인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너의 기억을 지우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며 기도하는 이기적인 여자가 나였어.


네가 작가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도 한동안 네 글은 의식적으로 피했어. 오래도록 나에게 우리의 사랑은 상처였고, 실수였고, 실패였으니까.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너인 줄 모르고 읽은 글을 시작으로 하나 둘, 과거의 너를, 우리를 만났고, 숱한 왜곡과 미화 속에서도 너의 진심은 하나의 또렷한 점처럼 떠올랐어.


그 시절의 우리들은, 그 시절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헤어졌어. 시류를 타듯, 유행을 좇듯. 지금, 90년대의 젊은이들은, 우리처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 21세기가 되면 또 그들의 사랑의 방식이 생겨나겠지. 한때는 운명이라고 믿어질 만큼 특별했던 우리의 감정도 20세기말의 흔한 사랑 방식을 따른 것뿐이었던 것처럼, 어느 미래에는 이별 후 매달리는 남자들의 순정이 멋진 게 아니라 구질구질하다며 쉽게 만나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것이 사랑이라 불리는 날이 올지도 몰라.


사랑은 영원하다고 하지만, 연인들의 사랑은 영원하지도 않고, 그 방식도 변하니, 그때의 진심도 과연 온전히 나만의 것이긴 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나는 너를 사랑한 걸까, 너를 통해 내 헌신을 주님 앞에 드러내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 시대의 사랑의 방식이 내가 널 사랑한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사랑은, 모르겠어. 나는 정말, 우리는 정말, 사랑했던 걸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 번으로는 결코 다 읽을 수 없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