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주인공인 토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양아치 같은 남동생 세스, 전쟁으로 장애를 얻은 이모부인가 고모부와 콜로라도의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다.
복숭아 농사를 돕는 순종적인 딸이었던 토리는, 마을을 찾아온 떠돌이 인디언 청년 윌슨 문과 사랑에 빠진다. 당시는 원주민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뿌리 깊었기 때문에, 그녀는 가족들 몰래 밀회를 이어간다. 그러나 일을 하다가도 수시로 윌을 만나러 뛰어나가다 보니 들키지 않을 수가 없다. 세스는 누나가 인디언과 사귄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동네 청년들과 작당해서 그를 차에 매달고 끌고 다니다 결국 죽게 만든다.
윌이 죽은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토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집을 떠나 깊은 산속 외딴 오두막에서 몇 달을 머물며 홀로 출산을 한다. 먹을 것이 점점 떨어지고, 아이와 토리는 모두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 산을 내려오게 되는데, 마침 차를 세우고 피크닉을 즐기는 젊은 부부를 본 그녀는 자기 아들을 차 안에 두고 달아나 숨는다.
차가 떠나는 것을 숨어서 지켜보다 쓰러진 아사 직전의 토리를 누가 구조해 주려나? 싶었는데, 웬걸 토리는 제 발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읭?
이 대목이 가장 납득되지 않는다. 도대체 집까지 걸어갈 힘이 있었다면 왜 아이를 두고 갔을까?
생면부지의 부부가 아기를 살려 키울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인디언의 아들이라면 오히려 버려질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그러나 우연히도 그 부부는 갓난아기를 막 얻은 상태였고, 마침 남편은 쌍둥이를 원했는데, 또 마침 아내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서 갑자기 생긴 유색 아들을 받아들인다. 우연의 중첩이 너무 심각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정이었다.
작품은 토리가 아이를 ‘떠나보냈’고 그 사건이 ‘비극’이었다 표현하지만, 엄마가 죽은 것도 아니고 아이를 빼앗긴 것도 아닌걸. ‘버렸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제 발로 걸어갈 기운이 있다면 일단 집에 가보고 동생이 여전히 살고 있다면 그때 결정해도 되었을 텐데. 심지어 돌아간 집에는 세스도 떠나고 없었기에, 아기와 함께 갔더라도 아버지는 묵묵히 딸을 받아주었을 거다.
혹자는 이걸 여성 성장 소설이라고 하던데, 아이와 재회하는 해피엔딩은 맞지만 성장소설인지는 모르겠다. 뒤늦게 후회를 하는 동생 세스에 대해서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집이 곧 수몰될 줄 알면서 말하지 않은 것도 쪼잔하고 소심한 복수로 보인다.
토리가 연애를 요란하게 했던 것이 비극의 씨앗이기도 했으니, 세스 입장에서는 누나를 뺏기느니 떠돌이 인디언을 내쫓아 버리고 싶었을 수도 있.. 아니 그래도 차에 매달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이 훌쩍 지나 돌아온 동생과 전혀 관계의 진전이 없는 부분은 성장이라기보다 미완의 상처로 남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소설 전반에서 토리가 농부로 성실한 건 인정할 만 하지만, 정신적으로 깊어진다거나 성장한다기엔 그저 자기 삶과 자기 것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에선 5점 만점에 2점 정도 소설이라, 읽고 서평도 안 쓰고 묵혀두었다가 최근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이름도 찾아가면서 쓰고 있는데, 토리의 아들 루카스와 잉가의 아들 맥스에 대한 이야기도 미묘하게 공감이 안되고, 자기가 낳은 자식보다 루카스를 더 사랑하는 잉가도 사실 잘 이해가 안 간다. 남편이 너무 싫어서 맥스도 별로였던가? 두 형제의 관계도 시종일관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전개라 구닥다리 느낌이 든다.
다시 떠올려도 2점 이상은 주기 어렵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빠도 처음에는 어머니가 고집했던 높은 기준과 오만 가지 규칙을 지키려고 했지만, 그런 규칙을 따르는 건 아빠 성격에 맞지 않았고 남에게 규칙을 강요하는 건 더더욱 그랬다. 자녀 양육은 어머니의 영역이었던 탓에 어머니가 떠난 뒤에 아빠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빠는 우리 남매를 진정으로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때그때 규칙이 떠오르거나 어머니 생각이 날 때, 또는 화풀이를 할 때만 우리에게 규칙을 강요했다. 그마저도 예전의 규칙들을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적용하는 바람에 세스와 나로서는 도무지 언제 어떤 규칙을 지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57
이 세상의 모든 선을 이기는 건 악이라고, 아벨에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착한 딸이 되든 착한 말이 되든, 복종하든, 사랑하든 마음대로 하라. 그러나 권선징악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건 동화책에나 나오는 이야기니까. 165
우정이란 게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욕심내지 않고 서로의 장점을 바라본다는 면에서 나는 젤다와 내가 좋은 친구 사이라고 생각했다.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