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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얼굴을 추격하며

나홍진의 추격자

by 책 읽는 쿼카

야, 4885... 너지 ?

추격자 2008.


한국 스릴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자리잡았죠.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본 범죄 혹은 스릴러 영화로 이 영화를 꼽을 것 같습니다. 2시간이라는 러닝 타임 내내 손에 땀을 쥐며 감상하게 하는 미친 흡인력과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자타공인 최고의 범죄 영화.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입니다.


저는 나홍진의 감독의 다른 영화 '곡성'을 매우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본 사람은 많지만 이 영화를 인생 영화라고 하는 사람은 드문데 바로 제가 그 경우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욱 많으니 나중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나홍진 감독이 영화 속에서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들은 다소 폭력적입니다.


아니, 많이 잔혹하고 때로는 가엾습니다. 곡성에서도 그러하듯,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악'의 측면을 가진 빌런을 하나 등장시켜 주인공들이 악한을 마주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빌런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인물들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반응들을 관찰하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과 내면을 탐구하게 되죠. 대개 빌런을 마주하는 인물들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지영민' 역시 그렇습니다. 소시오패스이자 사이코패스인 연쇄살인마죠.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빌런입니다. 오직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열두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이고 그 사실에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되려 자신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죠. 살인자의 전형같은 지영민의 캐릭터상은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목도할 수 있습니다.


살인마의 서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뭐, 별로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살인마는 절대적인 악을 행사하고, 그렇기에 주인공 일행이 그를 뛰어넘고 처리해야 하는 존재로서 기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마가 등장하는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는 '살인마를 피해 목숨을 구하는 것'이 메인 퀘스트가 되고, '추격'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다름 아닌 살인마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죽이러 오는 살인마를 피해 '도망'치는 존재가 되죠.


슬래셔 영화의 시초 격인 '할로윈'이나 '텍사스 전기톱 학살', 살인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며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스크림', '해피 데스데이'와 같은 영화가 모두 같은 장르죠. 이러한 살인마는 꼭 인간에 국한될 필요는 없습니다.


살인마가 인간과 더 먼 존재일 수록 미지의 대한 공포는 증가하며 서사의 요소는 없어집니다. 이런 경우는 모든 윤리적 요소를 배제하고 정말로 '죽거나 죽이거나'의 문제로 이야기가 전개되죠. 대표적인 작품으로 '괴물', '에이리언', '지퍼스 크리퍼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살인마가 위와 같이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인 경우는 전혀 '입체성'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인간이고 모든 인간에게 '괴물'은 괴물이기 때문이죠. 반면에 살인마가 '인간'인 경우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살인마가 모두에게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이 영화에서 지영민의 모티브가 된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지극하게 아들을 아꼈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다면적으로 변모하는 살인마의 입체성'을 보여준 영화였다는 점에서 정말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전직 형사, 현재는 보도방을 운영하며 아가씨들을 관리하는 '중호'입니다. 한마디로 '포주'죠. 하는 일로 파악할 수 있듯이 그는 그리 도덕적인 인물은 아닙니다. 초반에서 자신이 관리하는 아가씨에게 폭력을 행사한 손님을 후두려 패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중호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사람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죠.


요 며칠 간 아가씨들이 계속 사라져서 중호는 화가 납니다. 자신에게 돈을 가장 많이 가져간 아가씨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 피해를 메꾸려 아가씨를 빼돌린 범인을 찾으려 합니다. 사라진 아가씨가 마지막으로 전화한 핸드폰 번호가 '4885'라는 데에서 힌트를 얻어 형사 경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범인을 추격해 나가죠.


그리고 실제로 지영민을 잡는데에 성공합니다. 여기서 예의 명대사가 등장하는데, 동물같은 형사의 직감으로 자신과 부딪힌 자동차를 타고 있는 지영민이 4885 번호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도망치는 그를 잡아가려던 도중 운 나쁘게도 경찰에게 걸립니다. 중호와 지영민은 사이좋게 경찰서로 향하죠.


지영민이 아가씨들을 팔아넘긴 것이 확실하다며 화난 중호와 불쌍한 척 경찰서에 앉아있는 지영민은 진술서를 쓰고, 여기서 또 하나의 명장면이 탄생합니다.


진술서를 보다 무심코 던진 질문에 지영민이 예의 대답과 모순되는 대답을 하자 젊은 경찰은 이를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캐묻습니다. 처음에는 웃으며 부정하던 지영민은 자신의 살인경력을 자랑하고 싶은 충동에 못 이겨 사실을 말합니다. '죽였다'고요.


(경찰 심문 그림)


이 부분에서 또 하나의 클리셰가 깨집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많은 사람을 살해한 사이코패스라면 치밀하게 계획하고 자신의 범행이 들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 같은데 순순히 자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예상을 엇나가죠. 여타 영화였더라면 지영민이 풀려나는 고구마 전개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하나의 세력이 더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경찰'이죠. 작품의 핵심 세력 중 하나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실적과 명예를 위해 지영민이 열두명을 죽였다는 근거를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영민을 심문하며 증거를 잡으려 하지만 그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아 이들은 산으로, 채석장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고군분투합니다. 특히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생고생을 하죠.


(믿음직한 경찰 그림)


이들도 새로운 추격자입니다. 마냥 무능하지도 않습니다. 앞서 나온 순경 장면, 그 유명한 프로파일러 장면, 지영민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장면 등은 이들의 일처리 방식이 비효율적일 수는 있으나 연쇄살인범에게 마냥 휘둘리지 않고 권위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살인마를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 다는 점에서 중호와 공통점이 있죠.


다만 그들이 쫓는 것은 영민이 이미 죽인 '시체들', 다시 말해 '살인의 증거'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피해자를 찾는 것이 최우선이 아닙니다. 반면 중호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미진을 구하기 위해 자신만의 추리를 펼쳐 나갑니다. 미진이의 딸(은지)과 함께 보도방을 돌아다니며 지영민이 성불구라는 사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가 정말 연쇄살인범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진과 은지 그림)


상반되는 모습이 재미있지 않나요? 처음에 중호가 움직였던 이유가 뭐죠? 돈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떼어간 돈을 되찾기 위해 4885를 뒤쫓던 그가 은지를 만나면서 '미진이를 구하는 것'을 목표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솔직한 말로 결말 또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개인이 공권력이 할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겠습니까. 이 시대에 슈퍼맨은 없습니다.


희대의 빌런으로 유명한 슈퍼아줌마에 대해서도 저는 그리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영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시민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던 슈퍼 밖에 있던 형사, 지영민을 풀어준 검사에 손가락질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좀 더 자연스럽게 연출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결말은 필연적인 것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호는 쓰레기같은 사람이 맞습니다. 그는 아가씨들을 수단처럼 이용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법과 윤리를 무심하게 저버리는 사람이니까요. 사실 그가 아니었더라면 미진이가 지영민을 만날 일도 없었겠죠. 하지만 인간은 변합니다. 변하기 때문에 무섭죠. 그랬던 그가 은지를 만나며 미진이를 '목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변화 또한 캐릭터의 입체성을 드러냅니다. 법과 윤리를 개의치 않는다는 단점은 살인마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당당함과 강함으로 변모해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후반부에서 강조되는 경찰과 공권력의 무능함은 시청자들을 피로하게 하지만 과연 그들이 '무능'한지 돌이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경찰도 중호와 마찬가지로 살인자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살인을 증명하는 것에 있었기에 사람을 구하는 일에 있어서는 '무능'했던 것이죠. 사람을 구하는 일보다 먼저인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피해자', 특히 여성들의 입장에서 본 지영민은 어떨까요. 당연히 힘과 폭력성의 차이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살인마일 것입니다. 공권력을 가지고 있으나 여성이기 때문에 지영민에게 무시를 당하는 '여형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지영민이라는 살인범이 약한 자에게 강한 비열한 인물이라는 면모를 시사합니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힘'의 위계는 결국 악은 더 큰 '악'으로 제압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약한 자의 편에 힘을 가진 이가 서야한다는 교훈을 암시합니다.


처음부터 살인마를 대놓고 알려주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흐름은 상당히 긴박하게 흘러갑니다. 늘어지는 전개가 없고 모든 장면마다 하나 이상의 정보를 줍니다. 중호, 지영민 및 경찰, 미진의 시점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편집 방식 역시 이에 일조합니다. 추격이 시작될 때만 나오는 bgm 또한 적재적소에 잘 사용된 것 같습니다. 명장면이 많은 이유 또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장면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잘 짜여졌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초반에 미진이 지영민의 집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화장실 장면을 보면, 핸드폰 수신의 실패가 창문이 막힌 것을 보는 전개로, 마지막으로 잠긴 문을 바라보는 흐름으로 점층적으로 전개되는 절망의 깊이가 인상깊었습니다.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추격자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정말 엑스트라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연기가 출중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우와 캐릭터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대사와 행동 모두가 고도로 사실적이라 화면 밖에서도 인물들이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보도방 아가씨, 이길우 형사의 연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정리하면 연쇄살인마 지영민은 피해자들, 중호, 경찰등의 관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살인의 얼굴굴은 다양한 측면을 갖고 있고, 시청자들은 영화에서 이를 추격해 살아 숨쉬는 '악'을 마주합니다. 피해자들은 지영민에 의해 추격당하고 중호과 경찰은 지영민의 흔적을 공통적으로 추격하지만 중호는 '삶'을, 경찰은 '죽음'을 추격합니다.


지영민은 부조리한 힘 그 자체입니다. 폭력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것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점이죠. 우리가 폭력을 보지 않으면, 폭력도 우리를 보지 못할까요? 너의 고통을 묵살한 나의 행복은 고귀한가요? 그를 대하는 중호와 경찰의 대립적인 태도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방향성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자선이 아니라 선의고, 시혜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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