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빽빽한 세상에서 살아가다 바다의 여백을 보면 막혔던 숨이 시원하게 트여온다.
나라는 글자 하나를 써내려 갈 자리 한 칸 조차 찾기 어려웠던 삶에서 벗어나, 이곳에서는 내 안에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여러 문장들을 나열해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 것이다.
흐르는 물에, 부는 바람에, 끝없이 펼쳐진 하늘에.
내가 쌓아 온 모든 것들을 다 써 내려가도 한참이나 남아있는 여백을 보며 난 천진난만한 수다쟁이가 된다.
하루의 고민들, 움켜잡았던 감정들, 순간의 뿌듯함과 과거로부터 전달받은 후회들.
걸음을 따라 이어지는 두서없고 맥락 없는 나만의 문장들이 바람결에 부서져 포말 속에 녹아내려갔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로 엮여 솨아- 하는 파도소리로 되돌아온다.
파도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사랑스럽고 평온한 찰나의 시간이, 비워낸 마음 안에 새롭게 축적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잔뜩 굳어져 지냈던 일주일이 무색하게도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흑백사진처럼 보였던 하늘이 언제 저렇게 푸른빛이 되었는지, 이명처럼 거슬리던 소음들이 언제부터 활기찬 소리로 변해 마음을 설레게 했는지.
바다 위 여백에 흘러드는 내 안의 소리들을 따라, 딱딱하게 굳어있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이제야 제 길을 따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