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난 인어공주 이야기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어공주라는 등장인물을 좋아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두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면 보이는 것은 울렁거리는 표면과 푸르다 못해 시커멓게 보이는 깊은 물의 흔적뿐인데, 인어공주 이야기에 나오는 바다엔 놀라운 세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록달록한 산호초와 온갖 보물들, 노래하는 물고기와 화려하고 신비로운 궁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외모와 유려한 꼬리로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 치는 바다의 사랑스러운 공주님.
인어공주 동화책 안의 동심을 자극하는 바다의 이야기가 활자 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난 모든 것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인어공주와 바다 왕국은 좋아했으나, 그런 것들을 뒤로한 채 맞이한 공주의 결말만큼은 좋아할 수 없었다.
사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실체는 있으나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름 모를 거부감이랄까. 그것은 어린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더 이상 동화 속 이야기를 꿈꾸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야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인어공주는 어째서 모든 것이 있었던 자신의 터전보다 그것들을 전부 내던져야 하는 도박 같은 육지의 삶을 갈망했을까.
인어공주가 사랑한 건 왕자였을까,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었을까.
꿈꿔왔지만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 것들을 움켜쥐고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해풍 앞에 바스러진 질문을 내던져 보았다.
바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히 여민 옷깃의 틈새로 가슴팍에서 흘러내린 모래 알갱이처럼 부서진, 형태 없는 바랜 꿈들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성이 난 듯 세차게 부는 바람이 파도를 높게 밀어 올렸다. 들어 올려진 너울 같은 파도는 커다랗고 단단한 것에 부딪혀 물보라를 일으켰다.
튀어 오른 물방울이 순간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나는 순간 마음이 저릿해졌다.
물거품이 된다 해서 빛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었구나.
찰나의 깨달음이었다. 부서져 사라져 버릴 것이라 해서 모두 반짝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저 파도는 비록 자신의 의지가 아닌 바람에게 떠밀려 물거품으로 쪼개졌지만, 인어공주는 스스로 선택하여 온 힘을 다해 자기 삶을 부딪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눈앞에서 계속해서 반짝이며 부서지는 물거품을 바라보며, 결말에서 어떤 물거품보다 찬란하게 반짝였을 인어공주가 새삼 떠올랐다.
코 끝이 발갛게 시려왔다.
이제 더 이상은 인어공주의 결말이 싫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하게 뭉클한 감정이 내 안에서도 물거품처럼 피어 오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