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나에게 바다는 막막함이다.
누군가는 바다를 생명의 근원으로, 무한한 가능성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의 항로로, 아름다운 풍광으로, 격변하는 변덕쟁이로, 자연의 거대한 섭리로 부른다.
나도 바다를 그렇게 아름답고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바다를 바라보며 그 의미를 떠올릴 때마다, 원의 접선처럼 무한한 모든 수평선의 끝을 찾아내는 것과 같이 아득하고 막막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에도 난 발 끝에 치이는 모래의 반짝임을 찾고자 했고, 바위에 부서져 비산하는 물방울의 개수를 세어보고자 했으며, 해저 깊은 곳에 그어진 무언가의 흔적을 알고 싶어 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막막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어깨 위에 잔뜩 매달고,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러다 도저히 바다의 것들을 전부 헤아릴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난 내가 셀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눈을 돌렸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지나는 길목에서, 소금 알갱이처럼 하얗게 빛나는 별들이 밤하늘과 내 눈에 박혀왔다.
발아래엔 파도가, 머리 위엔 은하수가.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것들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나의 셈 속에서 헤아리고자 했다.
그래서 어느 삭막한 시간에 별을 헤던 한 시인처럼, 나도 점점이 발산하는 하얀빛들을 세어보았다.
하나 둘, 손으로 다 세지 못한 별들이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다시 세어야 하는 별들이 동쪽에서 떠올랐다.
결국 헤아리던 것들은 지고, 새로운 것들은 떠오르는 태양 빛 안에 몸을 숨겨버렸다.
나만 덩그러니, 별을 세던 손을 늘어뜨린 채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동시에 홀로 분주했던 내 모습이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입술 사이로 빠져나오는 숨을 따라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나도 모르는 새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라앉은 아침의 빛이 잔잔히 부서지는 바다는 여전히 막막했다.
해안을 따라 선을 이루는 하얀 포말은 막막한 것들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경계를 긋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그 선을 굳이 넘으려 하지 않더라도, 희붐한 아침의 여명이 그 막막함을 옅게 희석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제야 난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올랐다.
가장 어두운 시간, 거대한 막막함 앞에서 때로는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음을.
그러다 때가 되면 자연히 가장 빛나는 별이 막막한 바다 위를 비춘다는 것을.
수평선 위로 주홍빛 태양이 빼꼼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바다 위로 번져가는 주홍빛의 물결이 그날따라 너무나도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