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길(1)

유리창

by 별의 여백

하루의 끝이 가까워지고 하늘의 색이 가장 다양하게 번져가는 시간.


거리에는 각자 다른 모양의 하루를 품 안에 옹송그리고, 굴곡진 어깨를 추슬러 바쁜 걸음을 옮기는 모습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었다.


짙어진 그림자만큼 고단함이 짙게 드리워진 뒷모습을 따라 온갖 소음과 매캐한 연기들이 먼지처럼 들러붙었다.


저 사람들은 무엇으로 꽉 채운 하루를 태워냈을까.


쓰디쓴 냄새만 남은 연기처럼 희미한 잔상이 남은 길 한복판에서, 그 하루동안 아무것도 태워내지 못한 나는 홀로 텅 빈 채 길을 걷고 있었다.


내 나침반만 고장이 난 걸까?


이미 예전에 터닝포인트를 돌아 역행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혼자서만 방향을 잃고 멈춰서 버린 기분이었다.


애써 그 기분을 감추려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나도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비어있는 걸음은 길 위에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만 유리된 존재인 것 같았다.


불쑥 억울한 마음이 솟아났다.


노력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왜 나는 이 현실에 섞여 들어가지 못하고 방황하듯 길을 걸어야만 하는 걸까.


분명 같은 곳을 바라보고 사는데, 나 혼자만 유리창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한 채 떠나가는 뒷모습만 쳐다봐야 하는 걸까.


할 수만 있다면 보이지 않는 이 유리막에 힘껏 손을 뻗어 세상과 나를 이어보고 싶었다.


건조한 울음을 삼키며 길 건너 높게 솟은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에 반사된 빛이 눈부셨다.


나는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가로등 아래에 멈춰 유리창에 비친 저녁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녁해는 늘어진 망토의 끝자락 같은 노을을 하늘 끝에 남겨둔 채 순식간에 져버렸다.


그때였다.


벽면을 뿌옇게 메우고 있던 빛이 해와 함께 사그라들고, 저녁 하늘이 유리창 너머로 쏟아져 내렸다.


순간 내 안에서도 무언가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먹먹하고 어렴풋했던 것들이 선명한 형태가 되어 귓가를 찔러왔다.


쏟아진 하늘은 창을 파고들듯 스스로를 유리창에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하늘과 건물 사이의 아주 희미한 경계선만 남겨둔 채, 하늘과 유리창 안의 세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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