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생명이
우리를 선택해 찾아온다.
만 가지 복과 함께 도착했다.
새로운 가족의 존재에 감사한다.
- 정회도, 잘될 운명 확언 카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간 세계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다. 자라면서 동생이 태어 나는 일을 지켜보는 것은 신비로움을 넘어 마술 같았다. 어느 한 날 집안이 술렁거리다 꼼지락 거리며 눈망울만 있는 방울 같은 아이가 짠하고 방안에 나타났으니 어리둥절했었었다. 그와 반대로 순간까지도 살아 계셨던 분이 눈을 감고 자는 것 같은데 아무리 흔들어도 뜨지 않자 숨이 멎었다며 하얀 포로 덮어 실려 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언제라도 살아 돌아와 내 앞에 번쩍 나타날 것 같아 죽음이 무서웠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죽음은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며 꼭 맞닥뜨리게 되는 참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사람 삶이라 말하지만 죽음보다는 생명 탄생이 점점 신기하고 귀한 것이 사람의 언어 표현으로는 담을 수 없음을 손녀. 손자를 보게 되니 알겠다. 죽음이 때론 준비했음에도 갑작스럽게 맞는 당황스러운 일이며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헤어짐의 고통을 견디는 일이라면, 탄생은 기다림과 설렘이 있어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축복의 장이라서 그럴 것이다.
이 생명 탄생의 신비를 내가 낳은 딸을 통해 경험하니 다르게 와닿는 것이 묘하면서도 새로웠던 것이다. 새로운 감정에 취해 거슬러 올라가는 마음은 결국 부모로서 살아온 세월이 제법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 가지이면서 경이로움에 겸손해지는 사건이라 세상 이치의 신비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만들어준 날, 딸은 생명을 얻은 신비의 경험에 벅찬 감정과 딸자식을 낳은 기쁨이었지만 난, 딸이 딸을 낳았다는 기적 같은 현실에 내가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그 딸을 낳고 한 없이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당시 첫 아이를 낳은 기쁨은 엄두도 못 내고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몽롱한 상태에 어렴풋이 들리는 사람 인기척에 있는 힘을 다해 아이가 어떻게 되었느냐 물었다. 간호원이 '예쁜 딸이에요'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 말리는 몸으로 울음을 토해냈다. 한참을 애끓게 울었던 모양이었다. 수술을 막 끝낸 산모가 너무 운다고 그러면 엄마 젖이 안 나온다는 간호원 위로이자 걱정 한마디에 아이처럼 눈물을 훔치고 숨을 몰아 쉬었던 기억이다. 내가 딸로서 아니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자가 공부 많이 해서 뭐하냐, 여자가 되어가지고 말괄량이니 시집은 가겠냐, 넌 딸이니 집안일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 등 아들을 우선시하는 시대를 살았기에 딸이라고 들려오는 간호사의 말에 눈물을 쏟았던 것이다. 나처럼 차별받을 것 같은 불안과 산고의 고통을 겪는구나 싶어 안타까움에 그치지 않는 눈물이었지만 엄마라는 낯선 단어에 머리통에 전기가 번쩍이면서 눈물이 쏙 들어갔던 것. 아이에게 먹일 젖이 안 나온다니 덜컥 겁이 났던 것도 한 몫했다. 80년대는 분유보다 엄마 젖을 먹이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 분유값이 만만치 않았기에 지출이 생기면 생활비가 부족해지는 큰일로 번뜩 다가왔던 것이 비상사태를 막고자 울음을 삼킨 특효약이 되었다.
더욱이 아이는 세상을 나오고 싶은데 엄마 몸이 따라주지 않아 나오도록 돕느라 제왕 절개하여 세상과 만났기 때문에 몸이 많이 상했었다. 하여 둘째는 상한 몸 회복 후라도 쉽지 않을 거라 했던 의사 말에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나와 달리 자식을 얻은 기쁨에 딸이라서 좋다 하던 애 아빠는 시간이 흐를수록 술만 마시면 아들 타령이었다. 나는 딸 아들을 떠나 한 명은 외로울 것 같아 못 이긴 척 허락하였더니 결국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출산하였다는 간호사의 안내에 애들 아빠는 숨도 안 쉬고 3층 계단을 뛰어올라 아들을 보고 왔다는 말을 하며 입이 귀까지 걸려 얼굴이 활짝 핀 모습을 보았다. 애들 할머니까지 싱글벙글 거리는 분위기를 보며 무언지 모르게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는 안도감보다 아들을 낳아 기쁘다는 마음보다, 애아빠의 반응에 여자로서의 할 일을 끝냈구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어 씁쓸했다.
할머니가 된 묘한 기분에 나의 산 경험이 떠오른 것이지만 그때의 씁쓸함은 인간인 나의 욕심에 드러난 감정일 뿐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강하게 닿아 나를 위로해주었다. 고통이었던 삶의 기억도 씻어낼 만큼 탄생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고 어쩌다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주 속에 한 존재로 언젠가는 태어나야 할 신의 계획인 듯 인간이 어찌해 볼 수 없는 극한 상황이어도 탄생을 돕는 묘하고 귀한 시간 속에 주어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단 한 명의 탄생도 남녀를 넘어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다 살아내어야 할 이유가 주어져 세상을 만들어내는 구성원으로 있으니 모두 귀하다.
이 귀한 경험을 하지 못해 애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낳고 싶어 하지 않는 현실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고 아쉽다.
그런 점에서 자식을 낳는 경험 또한 귀하고 자식을 얻은 사람에게는 엄마라는 역할이 주어지면서 누구든 탄생의 귀한 이야기가 있겠지만 두 아이를 낳은 것은 나에게 벅찬 행운이었다. 그것은 딸아이 낳고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 아들을 낳아 더 악화된 건강으로 한참을 고생했다. 그래도 엄마인지라 탄생의 신비를 느낄 겨를도 없이 병고와 시달리며 키웠는데 고맙게도 잘 성장해주어 각자의 반려자를 찾아가는 기쁨을 누렸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힘이 들었던 것은 희미해지고 자식은 신의 선물로 기쁨이 되었고 감사한 일이 되었다. 이제 할머니로서 손주들이 하늘이 주신 생명에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기도할 일이 내 몫이다.
내 아들과 딸이 자신의 자녀들이 행복을 아는 아이로 성장시키는데 줄 선물이니까!
나보다 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은 자식이 좋은 엄마로 있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 자식을 함께 키우는 아빠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현실에서의 생명 탄생이다 보니 부모로서 지켜냄의 책임은 더 크게 와닿는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인 것 같다.
오늘 잘될 운명 나의 생각이다
*** 귀한 생명이니 부모가 자녀 뒤에서 묵묵히 버티며 응원하는 것을 알면 행복은 아이들 곁을 찾아가는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잘 받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