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국의 직장문화
대학원 시절, 나는 미국 직장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2013년에 개봉한 The Internship 속 장면처럼, 멋진 회사 캠퍼스, 무료 베이커리와 간식이 가득한 카페, 키즈 카페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사무실, 그리고 다양성과 자율성이 보장된 일터까지. 그런 환경 속에서 일하는 모습이 이상적으로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정작 어떤 회사에서,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도, 미국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한국 대기업에 들어가 졸업 후 귀국하는 것보다 왠지 더 ‘쿨’ 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육아 휴직 후 사연 많은 2년여간의 경력 공백을 버텨낸 끝에, 나는 아이와 단둘이 대전에서 한국 대기업에 취업해 가까스로 경력의 불씨를 살려냈음에도, 처음 들어보는 미국 스타트업을 선택했던 이유는...
물론 다른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지금 돌이켜보면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비록 미국에서 오래 살아왔지만, 미국 회사에서 처음 받아본 Offer Letter와 고용 계약서는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표현들로 가득했다. 그 계약서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근로 조건이 얼마나 다른지를 실감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Exempt vs Nonexempt Position
미국 회사와 고용계약을 체결할 때 가장 낯설었던 개념 중 하나가 Exempt와 Nonexempt였다. 한국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급여 체계를 나누는 반면, 미국에서는 직원의 근무 형태에 따라 "Exempt"와 "Nonexempt"로 구분된다. Exempt 직군은 주로 화이트칼라 직업군이며, 연봉제로 계약이 이루어지며 전문직, 관리직, 고위직이 해당되며 업무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Nonexempt는 시간제 근무를 하며, 주 40시간을 초과할 경우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받는다. 이 직군은 매일 Timesheet을 작성하며 주로 블루칼라 직업군이 속한다.
처음에는 이 조항이 업무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장점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회사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미국의 한 소기업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첫 번째 회사는 LA에 위치한 전기 트럭(EV truck) 제조 기업이었고, 세 번째 회사는 배터리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두 회사 모두 미국인이 운영하는 300~500명 규모의 중소기업이며, 각 직군에 맞게 맡은 프로젝트가 정해져 있고, 유연 근무제를 활용하여 업무 시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 실제로, 회사에는 Core Hour (핵심 근무 시간)을 정해두고, 이 시간을 제외하면 출/퇴근이 자유로웠다.
하지만, 두 번째 회사에서는 이 조항이 어떻게 악용될 수도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두 번째 회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20명 내외의 소규모 기업이었다. 사실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첫 번째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 (다음에 다룰 "Free Will"과 관련 있다), 단순히 규모보다는 비전이 있는 곳, 나를 인정해 줄 회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첫 출근을 해보니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소규모 회사이다 보니, 내가 맡은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업무가 주어졌는데, 문제는 이 추가적인 업무가 본 프로젝트보다 더 많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유연 근무제 조항과는 다르게, 엄격한 출퇴근 시간이 존재했으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명목으로,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근을 해야 했고, 야근은 물론, 퇴근 후에도 업무를 해야 했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Exempt 계약이었기 때문에, 연방 근로기준법(FLSA)에 따라 초과 근무 수당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즉, 회사가 원하면 언제든 초과 근무를 요구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미국에서는 Exempt 포지션이 업무의 자율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회사에 따라서는 이를 이용해 직원의 초과 근무를 무급으로 강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