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5. 미국의 직장문화

2. At-Will Employment

계약서에서 Exempt vs. Nonexempt보다 더 강조되어 있던 부분이 바로 At-Will Employment 조항이다.

이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의미지만, 동시에 회사 역시 자유롭게 고용을 종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 이 조항을 보았을 때는 당연한 내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권리는 피고용인을 위한 조항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미국은 원래 이직 문화가 발달해 있으니까, 나도 언제든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옮길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힘들게 채용한 직원을 그렇게 쉽게 내보내겠어?"

그리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이 조항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1년 만에 정리해고를 당한 후에야 실감할 수 있었다.


미국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한국에서 비자 문제로 헤드헌터와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비자 문제로 인해 2~3주 정도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 그 기간 동안 계약이 유지된다는 문구를 offer letter에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헤드헌터가 나에게 되물었다.

"고용된 상태에서도 다음 주에 바로 해고할 수 있는데, 그 문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솔직히, 그 말을 들었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해고할 수 있지?"

그렇게 의문을 가진 채로, 결국 그 문구는 포함되지 않았고, 포함된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헤드헌터의 조언에 따라 나는 세 번의 면접 끝에 한 기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직 R&D 랩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새롭게 만들 계획이며, 장기적으로 회사의 핵심 팀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입사 후 약 6개월 동안 실험실을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연구팀을 조직한 Director가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리고 단 2주 후, 우리 팀 전체가 정리해고 통지를 받았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회사는 연구팀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팀 전체 회식을 하고, 다시 열심히 해 보자고 Engineering Director로부터 응원도 받았는데 말이다. 더욱이 나와 리드 엔지니어는 한국 대기업에서 스카우트되었고, 이직을 위해 회사에서 많은 공을 들였었다. 그러나 이런 배경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퇴사가 비교적 쉬운 편이나, 해고는 어렵다.
퇴사할 때 회사는 조직 차원에서 조정할 시간을 가지며, 여러 상담 절차를 걸쳐 퇴사가 이루어진다. 반면,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직원이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근로계약을 명백히 위반하지 않는 한, 부당 해고는 법정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퇴사도 간결하고, 해고는 더욱 냉정하게 이루어진다.

어느 날 아침, 인사부와의 면담이 갑자기 잡히거나, 심한 경우 출근했을 때 컴퓨터가 켜지지 않거나 출입증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곧 정리해고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고되더라도 법정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At-Will Employment" 조항이 회사의 합법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시작 첫 2년 동안 나는 그렇게 입사 → 퇴사 → 이직 → 정리해고의 과정을 모두 경험했다.

30대에 맞닥뜨린 정리해고는 미국 직장 문화의 근본을 직접 체감하게 만들었다.
"이직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만큼, 해고의 자율성도 보장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회사에 대한 애사심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업무와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은 더 강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믿음보단, 나의 실력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해야지만 회사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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