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삶의 질 II - 주마다 너무 다른 미국생활

결혼 전까지 한국에서는 서울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외갓집을 갈 때를 제외하면, 서울이 전부였던 나에게 미국에서의 이사는 일상이 되었다. 이제 또 다른 주로 이삿짐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서의 삶을 돌이켜보면, 다양한 곳에서 살아왔다.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4년, 평균적으로 2~3년씩, 15년 동안 5개 주, 7개 도시를 옮겨 다녔다.

신기하게도, 이사할 때마다 같은 주가 아닌 매번 다른 주로 이동했다. 동부에서 서부로, 서부에서 중부로, 다시 서부로… 그렇게 7번의 이사를 경험하면서, 이사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다른 주로 이사를 하는 건 마치 다른 나라로 이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날씨, 생활 물가, 생활 인프라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국으로 첫 이주와 그 후 다른 주로 이사할 때의 경험, 그리고 각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미국 이주 (오래전 일이라 지금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처음 미국에 오면 은행 계좌도 없고, SSN(한국의 주민등록번호처럼), 신용 기록도, 심지어 미국 핸드폰 번호조차 없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은행 계좌를 만들려면 거주하는 집 주소가 필요하고, 집을 구하려면 SSN이나 신용 기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신용 기록을 쌓으려면 신용카드가 필요한데, 신용카드를 만들려면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한다는 순환 구조의 딜레마가 있다. 미국에는 이렇게 순환 구조의 문제들이 많은데, 특히 신분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여담으로, 아이의 세금 정보를 추가하려면 아이의 SSN이 필요한데, 이게 없으면 Tax-ID를 발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Tax-ID를 받으려면 아이의 세금 보고가 있어야 하고, 그 세금 보고를 하려면 아이의 SSN이 있어야 한다. 결국 3년간 시도 끝에 영주권을 받고 나서야 아이의 정보가 세금 서류에 포함되었다.)

더군다나,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처음 오게 되면 SSN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 처음에는 현금으로 계약하거나(신용 기록이 없기 때문에 계약 기간 전체의 렌트비를 미리 지불하거나 혹은 계약 전체의 렌트비 x 3의 현금을 통장에 증명해야 한다.), 운 좋게 좋은 집주인을 만나 "믿음"을 보여야 계약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겼다고 해도 또 다른 난관이 있다. 바로 인터넷, 전기, 수도 등 유틸리티 서비스를 개설하는 일이다. 이 역시 대부분 SSN을 요구한다. SSN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허가가 있어야 발급되기 때문에, F-1 비자나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장학금이나 연구비 증빙을 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절차들 때문에, 처음 대학생으로 미국에 왔을 때는 단독 아파트를 구하지 못하고, 기숙사나 룸메이트와 함께 살 수밖에 없다. 1년 동안은 독립적인 생활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집 주소를 시작으로 은행 계좌 개설, SSN 신청, 핸드폰 개통, 신용카드 개설까지.

미국에서 SSN, 핸드폰, 그리고 좋은 신용 점수와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다면, 비로소 미국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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