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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Sep 24. 2022

10년만의 개강 첫 달

디지털화 된 대학 강의, 캠퍼스만의 분위기

 9월 첫주, 졸업하고 10년만에 다시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거의 10년 간 회사를 다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간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한다는 생각에 걱정스럽기도 한 채로 첫 주를 시작했다.


  오전 첫 강의를 들으러 기숙사에서 나왔는데, 어디서 이 많은 학생들이 나타난건지 넓디 넓은 캠퍼스가 사람들로 가득했다. 날은 화창했고, 쏟아지는 햇빛 아래로 수많은 학생들이 바쁜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학생들을 환영하려는지 한 켠에서는 밴드 동아리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고, 수많은 카드 회사와 은행에서 부스를 차려 신입생들에게 판촉 행사를 하고, 전문 빈티지샵에서 옷을 한트럭 실어와 늘어놓고 학생들은 재빠르게 아이쇼핑을 하고 입어보고 있었다. 여름 내내 밴쿠버의 이런 공원에, 이런 바다에, 이런 호수에 사람이 이렇게 적을 수가 있다니 감탄하며 지냈는데 그 어느때보다 붐비는 캠퍼스의 모습에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웃음이 났다. 10년 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캠퍼스를 좋아했던 그 때의 내가 살며시 기억났다. 이 활기, 이 북적거림, 새로움이 시작되는 때의 열기.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새로 시작하는 때의 설렘이 좋았다.


 기분 좋게 첫 강의실을 찾아갔다. 모두들 노트북이나 패드를 펼쳐놓고 있었다. 코로나 시절을 통과하며 강의들이 출석체크와 퀴즈, 과제를 모두 온라인으로 한다고 공지가 있어서 나도 일단 아이패드를 꺼냈다. 사실 대학 다닐 때는 과제할 때만 가끔 노트북을 썼고, 수업시간에는 늘 노트 필기를 하고 학생회관에서 수업 자료를 프린트해서 준비했던 터라, 이런 풍경 자체가 좀 낯설었지만 좀 더 편한 방식인 것 같았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새 깨달았다. 어학원에서와는 달리 교수님은 무척 빨리 말했고, 갑자기 화면에 QR코드가 떴고, 무슨 상황인지 깨닫기도 전에 학생들은 폰으로 코드를 찍었고, 내가 폰을 들었을 때 이미 화면은 바뀌어 있었다. 그 코드는 학생들이 교수님께 질문을 남길 수 있는 사이트의 링크였다. 대면 강의에서 QR코드로 질문을 받다니 신기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출석체크용 퀴즈를 띄웠다. 그런데 인터넷이 느린건지 접속되지를 않았다. 우왕좌왕 하는새에 퀴즈참여자 수는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교수님은 퀴즈를 닫았다. 1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인터넷이 느려서그런건데! 하고 억울해하는데 퀴즈참여자 수는 100명이 넘었다. 그러니까 모두의 인터넷이 잘만 되는거였다. 그렇게 몇번 더 불시에 퀴즈 나오고, 내 손은 느리고, 영어로 된 퀴즈를 해석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교수님은 1분 안에 퀴즈를 닫으며 첫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정신이 혼미한채로 강의실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4층 강의실에서 내려갈 때의 계단은 꽉 차 있었고, 워낙에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는 학교인지라 나보다 키가 무척이나 큰 학생들의 가방에 치이며 겨우 겨우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건물 밖은 또 쏟아지는 햇살 안에 북적이는 부스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그 틈에서 다음 강의실을 찾아 나도 바삐 움직였고, 다음 강의, 그 다음 강의에서도 똑같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질문용 코드, 빠른 퀴즈, 빠른 반응 속도, 그 자리에서 내 퀴즈 답이 맞았는지 뜨고, 오늘의 점수 총합이 뜨는 시스템. 나는 정신이 쏙 빠졌다. 교내 서점에서 교재를 사라고 공지되어 있었는데, 서점에서 파는 것은 두꺼운 교과서가 아니라 e북과 과제를 할 수 있는 사이트의 접속 코드였다. 서점에서 계산을 하고, 이메일로 그 코드를 받았다. 기진맥진했다.  


 학교를 떠나 10년을 보내면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한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 나름 아이패드로 강의도 듣고, 드로잉도 하면서 20년동안 만년필로 일기를 쓰고, 종이책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졌음에도 디지털 변화에도 발 맞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떠나 있던 학교에 돌아왔더니 10년의 변화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코로나 시절의 2년 간 학생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더 빨리 변한 것 같다. 왜냐면 회사에서도 갑작스럽게 재택 근무 시스템이 활성화 되고, 줌으로 회의를 하고, 교육을 하며 2년 간 전에 없던 상황에서도 나아가기 위해 많이 바뀌었으니까. 회사에서는 그 변화를 한걸음 한걸음 같이 했지만, 오래 떠나 있던 학교에 다시 돌아오니 10년 치 변화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개강 첫주는 이렇게 각인되었다. 무척이나 정신 없음.


  그렇게 3주를 더 보냈다. 이제 퀴즈 참여는 가끔은 놓쳐도 대부분 참여할 수 있다. 벌써 과제를 몇번이나 내줬는데, 과제는 과제사이트에서 한다. 문제가 뜨고, 내가 답을 고르거나 쓰면 채점도 즉각 된다. 경제학 과목은 그래프도 그려야하는데 그런것도 다 채점이 된다. 나는 그림그리고 남편은 음악하려는 용도로 샀던 아이패드는 수업 필수품이다. 이게 없으면 아예 대학을 다닐 수가 없다.


 우연히 발견한 학관 4층의 아름다운 자리에 자주 앉아 과제하고, 공부하고, 글도 쓴다. 한달의 정신 없음이 지나가고 적응하고 나서 느낀다. 북적이는 캠퍼스, 나무가 많은 교정, 파란 하늘. 공부도 하고 동아리에 들어가 취미 생활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던 학교 생활. 10년 전에 비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확연히 줄었지만 나는 여전히 캠퍼스만의 활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 자리에 앉아 많은 시간 공부하고 글쓰리라는 것을 알겠다. 10년 만의 학교생활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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