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온지 세달째, 밴쿠버의 환상적인 여름, 바깥 생활에 대한 글을 써왔지만, 오래 머물 집을 구하지 못한채로 민박집이나 에어비앤비를 떠돌다 학교 기숙사에 들어와 2주를 보내고나니 한국에서의 편리함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4년 전 결혼하면서 신혼 살림을 채웠다. 남편과 나 둘다 무척 바쁜 와중에 결혼을 해서 집안일을 줄여줄 수 있는 생활가전에 돈을 아끼지 말자 생각하고 한창 유행하던 가전들을 모두 들였다. 건조기와 식기세척기, 무선청소기와 로봇청소기, 음식물쓰레기처리기까지. 둘 다 몇년 간의 자취를 한 후 결혼한 터라 나 하나 먹고 입고 사는데 얼마나 많은 집안일이 생기는지, 그 일들을 하느라 퇴근 후와 주말의 시간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만난 신혼의 생활 가전들을 우리는 매일같이 찬양했다.
요리를 재밌게 하고 나면 쌓일 설거지가 싫어서 대충 먹었던 수많은 끼니들이 더 자주 그럴듯해졌다. 도무지 빨래가 마르지 않아 원룸 한가운데 빨래와 제습기와 선풍기와 함께 살았던 장마철이 견딜만해졌다. 매일 매일 이렇게나 많이 빠지는데 왜 내 머리숱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던 머리카락과의 싸움도 사라졌다. 주말에 무선청소기로 구석구석 한번 청소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꽤 많은 시간과 마음의 여유 덕분에 우리는 자주 고요한 순간들을 누렸다. 일주일의 밀린 집안일을 끝내고서야 누릴 수 있던 주말이, 아침 햇살에 느릿 느릿 일어나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커피 한잔 내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를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던 기계님들을 뒤로 하고 외국에 와서, 최소한의 살림으로 지내보니 그 시간이 얼마나 달았는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캐나다에 와서 지낸 민박집, 에어비앤비, 기숙사 모두 공용 세탁실을 썼다. 세탁을 위한 동전을 은행에서 가져와 세제를 챙겨 빨랫감을 들고 세탁실에 가면 이미 세탁기가 다 차있을 때가 많아서, 두번씩 왔다갔다 하다가 이제는 맨몸으로 세탁기가 비었는지 확인부터 하고 온다. 공용 세탁기 관리가 잘 안되어 있어 옷에 녹이 든 물이 들 때도 종종 있다. 전에 아끼는 옷들은 망에 담아 하나씩 울코스로 세탁을 했는데, 이제는 아끼는 옷들은 손빨래를 한다. 그래서 점점 건조기에 막 돌려도 되는 옷을 주로 입는다. 색깔별로 나눠 세탁하기가 번거로워 한꺼번에 세탁하고 살아남는 옷들만 입는다. 개인 세탁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게 이렇게도 큰 일 이었다니, 정말이지 몰랐다.
외식비가 비싸 거의 매 끼를 해먹는데, 돌아서면 밥먹을 시간이고, 먹고 나면 설거지해야하고, 설거지하고 나면 또 밥시간인 것도 낯설다. 식기세척기에 대충 넣고 돌리면 기름기가 말끔히 사라졌었는데, 기름기가 어찌나 안지는지 몇번을 문지르고 헹궈야만 한다. 컵 한번 쓰면 싱크대에 그냥 놓고 말았었는데 이제는 한번 쓰면 곧바로 헹구는 부지런함이 생겼다. 매일 식기세척기를 그리워하며 부지런해지는게 신기하다.
다시 뿜뿜하는 머리카락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돌돌이를 사서 머리 말리고 나면 바닥을 정리하며 내 머리숱에 대해 생각한다. 카페트 바닥이라 머리카락 청소를 게을리하면 나태해졌을 때가 걱정되서 아직은 매일 정리하고 있다.
4년 간 많은 집안일에서 해방되었던 우리는 다시금 나타난 반복되는 가사 노동에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퇴근 후나 주말에 주로 누워있었는데, 물론 지쳐서 누워있었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누워 있는 시간이 월등히 줄었다. 우리가 너무 누워 있는 신혼부부라 좀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기계님들덕분이었음을 없어지고 나서야 알겠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그제서야 마주하는 고요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여기로 떠나오며 기계님들을 양가 부모님들께 드렸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가사 노동에서 좀 자유로워지셨을까. 없다 있으니까 좋긴 했지만 있다 없으니까 그 좋음을 더 잘 알겠는데. 집에 전화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