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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Oct 14. 2022

오랜 불안으로부터 멀어지는 중입니다(삶의 격을 읽고)

내적 독립 : 감정적 동요

  두려움, 분노, 미움, 시기 등의 마음, 다시 말해 감정적인 면에서 독립한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 여기서 독립성을 논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감정을 갑자기 생기게 하거나 없앨 수 없다. 감정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감정적 자립을 지킨다는 것은 언제 어떤 감정을 품을지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뜻일까?

  우리는 어떠한 감정이 상황에 적절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그 감정이 상황과 그 상황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과연 어울리는지 자문하는 것이다. (중략) 나는 무슨 근거로 전염병에 걸리거나 지진이 날까봐 두려운가? 아니면 그저 공황상태에 빠진 것인가? 과연 정당한 대상을 향해 걷잡을 수 없는 화와 미움을 쏟아내고 있는가? 도대체 이 감정 자체가 적절한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봄으로써 우리는 착각이라는 의미에서의 감정 종속성에 좀 더 대항할 수가 있다. (중략)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면 감정도 달라진다. 우리는 감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립성을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파스칼 메르시어, '삶의 격' 중에서


  


  밀라논나 할머니가 추천한 '삶의 격'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깊이 사유한 책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감정적 동요에 대해 어떻게 내가 휘둘리지 않고 분노와 공포를 억제하거나 억제하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는지, 나 자신과의 심리적 일치감을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문장을 만났다.


  나는 오랫동안 내 안의 각종 불안 때문에 많은 게 힘들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2월부터 1년동안 가족도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할 때는, 온갖 불안에 떨다가 직장생활의 압박 때문에 아주 늦게 1차를 맞았고, 그 이후엔 온갖 걱정 속에 각종 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2차 주사는 맞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을 때에만 괜찮을 수 있었다. 신혼 초 남편이 고속도로를 1시간 정도 타는 거리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출발한다는 연락이 있고 1시간이 지나서 카톡에 답장이 없으면 머릿속엔 온갖 교통사고의 모습이 떠올라 힘겨웠다. 잘 오고 있는지 연락하고 싶어도 운전중에 전화를 받다가 더 큰 사고가 있을 것을 걱정하느라 연락하지도 못했다. 매일 출퇴근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내 마음은 요동쳤다. 동생이 혼자 춘천으로 놀러갔다가, 집에 이제 곧 올꺼라고 하고는 밤11시부터 연락이 끊겼을 때에는 1시간 여 동안 경찰에 위치추적을 요청하고, 동생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동생 친구들 연락처를 아는게 몇 년 전 저장했던 동생의 구남친 번호밖에 없어 구남친에게까지 전화를 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울면서, 대학 친구들 번호좀 알려달라고. 12시 30분쯤 핸드폰 배터리가 나갔다면서 집에 돌아온 동생은 단 1시간 30분동안 벌어진 일에 어처구니 없어하고 너무나 창피해하며 언니 미쳤냐고 했다. 만약 며칠 연락 두절되었다면 충분히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 1시간 30분만에 이런 난리를 부린 나는 어딘가 미친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으므로 나는 그랬다. 이런 일 말고도 출장가는 비행기 안에서 테러를 당할까봐, 추락할까봐 눈물을 훔치고, 온갖 병원을 다니고, 연락이 안되면 열몇통의 전화를 하며 나와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기차에서 쓰러진 적도 있다.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라서 병원에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게 불안증, 공황장애 같은것이라는걸 안다.


 그런데 문득, 20년도 더 된 불안에서 얼마간 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과 결혼한지 4년, 연애한지는 8년이 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남편은 나의 불안을 봐왔다. 과학고를 나와 공대에서 공부한, 나와는 뇌구조가 아예 다른 남편은 정말이지 이성적이다. 내가 무언가를 불안해하면 통계를 읊고 확률을 말한다. 확률이 작은들 나한테 일어나면 나에겐 100%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8년이란 시간동안 변함 없이 그랬다. 고속도로를 걱정하면 출퇴근 시간의 교통체증 시간 범위에 대해 말해주고, 비행기에 대해 걱정하면 10년간 비행기 추락 사고율을 알려줬다. 백신 개발이 너무 빨리 되었다고 하면 이 백신 기술 개발에 얼마나 긴 시간이 투입되었는지를 얘기했다. 나의 불안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나의 불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이 불안한데 어쩌냐고, 호흡이 가빠지고 끊임없이 나쁜 생각만 드는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8년이 흘렀고, 어느 순간 같은 상황에서 불안해 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이 말해주던 것을.


  그러다가 책에서 감정적 동요를 다스리고 내 감정에 대해 내가 주인이 되는 법에 대한 문장을 읽게 된 것이다. 어떠한 감정이 지금의 상황에 적절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것.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줄 몰랐고, 옆에 있는 사람이 내 감정이 지금 상황에 적절하지 않음을 말해주었고, 어느덧 내 스스로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나는 오랜 불안에서 멀어지는 중이다.


 결혼한지 4년이 지났고, 우리는 아이 계획이 딱히 없었다. 그런데 나는 요즘들어 2세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걱정된다고, 2세 없이도 우린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스스로의 건강, 가족들의 안전에 대해 그렇게도 불안해하는 내가, 나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겼을 때 너무도 힘겨워할 것 같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나를 되돌아보면 그렇다. 임신 중에 일주일에도 몇번씩 아이가 괜찮은지 초음파 확인을 하고싶어할 나. 아이가 태어나고 열이 조금만 오르면 정신 없이 응급실로 뛰어갈 나. 학교에 들어가면 괴롭힘을 당하진 않을지, 무슨 문제는 없을지 걱정할 나. 밤길이 걱정되어 항상 데리고 싶어할 나. 나의 불안이 나에게 속해있을 때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해 온 나.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자식에 대한 커다란 사랑이 불안과 만났을 때.


 그러니까 나는 나아져야 한다. 이만큼 불안으로부터 멀어졌으니,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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