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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Nov 26. 2022

캐나다 대학생들이 매일 운동하는 이유

  주말에 수영장에 갔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있었다. 누가 봐도 선수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풀 옆에서 몸을 풀고 있었고, 전광판에는 이름과 기록이 쓰여져 있었다. 알아보니 대학 리그가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캐나다 대학 스포츠의 역사는 100년도 더 되었는데, 전국의 대학 팀들이 아이스하키, 축구, 럭비, 수영, 배구, 마라톤, 농구 등 각각의 종목별로 매년 승자를 가린다고 한다. 스포츠에 딱히 관심이 없던 나는 아 그렇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환호하는 수영선수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친구가 금요일 저녁의 배구 경기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한국에서도 월드컵 때의 우리나라 축구만 잠깐 보는, 대학생 때 친구들 따라 야구장에나 한번 가봤던 나는 배구의 규칙도 몰랐기에 타국의 대학생들의 경기를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금요일 저녁에 딱히 할일도 없고 경기장이 기숙사 바로 앞이길래 산책 삼아 가보았다.


  휘둥그레.  


금요일 저녁의 학교는 적막하다. 그런데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관중석은 함성소리를 내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고, 커다란 전광판에는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고, 싸이를 닮은 응원 단장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춤을 추고 있었고, 해설자가 열정적으로 경기를 해설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월드컵도 아니고 결승전도 아닌 대학 배구경기에서 나다니. 어안이 벙벙한 채로 한참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이내 나도 분위기에 휩쓸렸다.


  배구는 속도감 있게 진행이 되었다. 25점을 향해 한점 한점 날 때마다 선수들은 동그랗게 모여 서로를 토닥이고, 한점 한점 날 때마다 관중들은 환호했다. 양 팀의 실력이 팽팽해서 1점씩 엎치락 뒤치락 했고, 결국엔 24:24가 되어, 2점을 먼저 내면 이기는 듀스 상태로도 몇번을 이어갔다. 배구의 배자도 모르던 나는, 그저 내가 지금 다니는 대학팀을 응원하며 듀스 진행 중에는 발을 동동 구르며 함께 환호했다. 경기는 결국 졌지만 몸을 날려 공을 받다 다쳐도 밴드 붙이고 다시 코트에 들어서는 선수, 서브에 실패해도 동그랗게 모여 어깨를 토닥이는 모습, 선수가 교체될 때마다 손바닥을 마주치며 마음을 전하는 표정, 상대편의 학교에 원정 경기를 와서 일방적인 응원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승리한 선수들의 정신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관심 없다 여겼던 스포츠에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 다음날에도 경기를 보러 갔다. 전날 저녁 경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서 3시간이나 뛴 각 팀이 다음날 똑같이 또 경기를 한다기에 (왜 두번 하는지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원래 배구 규칙인지 캐나다 대학 리그 규칙인지), 전날 그리도 열정적인 승부를 펼쳤는데 다음날엔 어떨지 궁금했다. 두번째 맞붙은 경기도 똑같았다. 너무도 팽팽했고 또다시 듀스 끝에 승패가 갈렸다. 나는 또 정신없이 응원하다 돌아와서 선수들이 궁금해져 검색을 했다.


  그런데 팀 선수 소개글엔 각 선수들의 전공이 적혀있었다.나는 그냥 당연히 체대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공엔 '경영'도 있고 '기계공학'도 있고 '역사'도 있었다. 아니 저렇게 매주마다 경기를 하고, 심지어 저렇게 잘하는 배구 선수들이 전공이 따로 있다는게 무슨말이지? 게다가..우리 학교 경영대는 유명한 편이다. 공부도 어렵고 졸업하면 취업도 잘된다. 명문대 경영대생이 배구 팀의 에이스라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 나는 자주 아프고, 하이킹 한번 가면 다녀와서 며칠은 집에 누워보내는데.


  그래서 친구들한테도 물어보고 검색도 해보니 캐나다는 우리나라랑은 체육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랐다. 우리나라는 소위 '엘리트체육' 문화로 어렸을 때부터 체육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유명한 체육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프로가 된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은 일주일에 몇번 안되고, 그마저도 피구 조금 하거나 배구 조금 하거나 줄넘기를 조금 하곤 했다. 그런데 캐나다는 너무나 당연한 '생활 체육' 문화라서 초등학생도 고등학생도 일주일에 체육 수업이 매일 있고, 매년 온갖 운동부 가입자를 모집하고, 모두가 하고 싶은 운동부 몇개씩은 가입하기 때문에 캐나다에 유학간 한국인들도 친구들이 다 하니까, 딱히 자신이 운동을 잘하는것 같지 않아도 같이 운동을 한다고 한다. 생활 속에 늘 체육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랑 병행해도 선수가 될 만큼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어쩐지, 이 대학에서 공부한 세달 내내 맨날 학생들은 뛰어다니고 수영장에도 사람 많고, 심지어 클라이밍 시설도 있고, 헬스장도 붐비고, 그 옆에서 테니스 치는 사람도 많고 산책하고 있으면 마라톤 동아리인것 같은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다니고, 주기적으로 잔디밭에는 어린이들이 부모님이랑 같이와서 작은 골대에 골을 넣으며 어린이축구같은걸 하고, 애들도 테니스를 너무 잘친다 했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운동은 어릴 때부터 음식을 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4.5 m 깊이의 수영장에도 유아들이 다이빙을 하고 수영을 했던 거고, 10살 남짓으로 보이는 남매가 테니스 랠리를 하는 거고, 여름에 해변에는 발리볼을 하는 남녀노소가 100명은 되는 거고, 대학 리그에 출전할 만큼 실력이 있는 체육 비전공자들이 무척 많은 거고, 그 리그를 응원하러 매주 있는 경기에도 관중들이 꽉 찰 만큼 오는 것이었다.


  갑자기 학창시절의 내가 안쓰러워졌다. 하루 10시간씩,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녁을 먹은 후 밤 10시 11시까지 야자를 하던 나와 친구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나서 대학갈 때 다이어트 하고 싶어 헬스장을 찾았다가 30분도 못하고 지쳤던 기분. 대학가서 1학년 2학년 땐 나름 즐거웠지만 다시 취직을 위해 공부하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날들. 그 끝에 취직을 하곤 허리가 고장나 1년 간 도수 치료를 받아야 했던 날들. 10년 간 일을 하고 30대 중반이 되어 이곳에 와서 체력을 넘는 활동에 몇번이나 아팠던 시간들.


  운동을 그렇게 오래 곁에 두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 같다. 처음엔 못해도 매일 매일 꾸준히 노력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옆에 있는 친구와의 협동심, 승리의 순간에 느끼는 감동과 짜릿함, 그 순간에 모두 날아가는 스트레스, 졌더라도 함께 위로하고 다음에 임하는 단단한 마음, 무엇보다 건강한 몸에서 비롯되는 맑은 정신 같은것들.


  소수의 운동부 학생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런 건강함을 누리며 산다는게 부럽다. 과거의 내가 안쓰럽고, 지금의 내가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을 가까이 하려고 애쓰는것은 다행이다. 다만, 30대만 되어도 몸이 확 아프다며 먹는 영양제를 공유하는 내 친구들, 그리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을 학생들이 안쓰럽다. 개인이 좀 더 부지런하면 된다고 생각하기에는 살아가는 문화가 너무도 다르다.


 오늘은 그 문화의 차이가 너무도 속상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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