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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Apr 30. 2024

육군 병장을 울린 우즈베키스탄
비닐봉지

오래전 군대생활 할 때였다. 전역을 3주 앞두고 대대급 야외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 지역이 최전방 지역이기도 했고,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부대가 있는 곳 근처이다 보니 지휘관들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었다. 우리 중대는 모처에 집결했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훈련을 마친 후 다시 처음의 집결지로 복귀하게 되어 있었다.      


집결지에는 중대원들에게 나누어 줄 건빵 130 봉지가 낱개로 쌓여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중대원들에게 나누어 주지 못한 채 중대가 훈련지역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중대가 복귀할 때까지 집결지에서 건빵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고, 전역을 앞둔 내가 적임자로 선택되었다.       


나는 중대가 떠난 후 집결지에 혼자 남아 낮잠도 자고 건빵도 먹으며 말년 병장으로서의 여유를 느긋하게 즐겼다. 이 모든 것이 그동안 힘들게 군대 생활을 한 대가로 생각되었고, 이번 훈련이 국가를 위해 기꺼이 젊음을 내 던진 한 용사의 전역을 축하해 주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기념행사 같았다.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이 흐르고 해질 무렵이 되었다. 그런데, 벌써 돌아왔어야 할 부대가 복귀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날이 어두워지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과 함께 일종의 위기감이 몰려왔다. 안절부절못한 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던 그때, 아래 숲 근처에서 ‘이병장님! 이병장님!’ 하는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야, 여기!’ 하는 나의 처절한 외침을 따라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중대의 또 다른 선임 병장이었다. 선임 병장은 훈련계획이 변경되어 중대가 집결지로 복귀하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사태의 전말을 듣고 나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선임 병장이 이어서 전해 준 말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황당무계한 임무가 남아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건빵 봉지 130개를 들고 중대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다는 말의 어원은 최근에 알았지만 그 뜻은 그때 경험했다.        


그러나 군대는 군대니만큼 임무는 완수해야 했다. 생각 끝에 판초 우의를 펼쳐 그 위에 건빵 봉지를 쌓은 다음 두 사람이 양쪽에서 들고 게걸음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엎어지고 뒤집어지기를 수십 차례, 그때마다 패대기친 건빵봉지를 손으로 더듬어 주워 담아야 했다. 전역할 때까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을 이기고 만신창이가 되어 부대에 도착하니 건빵 봉지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타슈켄트에 와서 처음 월세집을 구해 입주하던 날이었다. 집주인과 입주를 위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다. 집주인이 인근의 식당과 슈퍼마켓 위치를 알려 주었지만 지리도 모르고 날도 어두워져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당장 식수와 화장실 휴지, 간단한 요기 거리가 필요했기에 인근에서 구멍가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근처를 아무리 뒤져도 구멍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한 집 건너 구멍가게나 편의점이 있는 한국과는 달랐다. 집주인이 굳이 식당과 슈퍼마켓 위치를 따로 가르쳐 준 이유가 있었다. 할 수 없이 큰길로 나와 집주인이 슈퍼마켓 위치를 가르쳐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30분 정도 걷다 보니 조그만 구멍가게가 눈에 띄었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가 보니 좁은 가게 안에 물건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고, 내가 필요로 하던 모든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본 김에 많이 구입하자는 생각에 우유, 빵, 과자, 두루마리 휴지, 그리고 페트병에 들은 생수 여러 병을 샀다. 가게주인이 손 계산기에 찍어 주는 금액을 보니 한국 돈으로 다 합쳐 몇 천 원에 불과했다. 가게 주인은 검은 비닐봉지 여러 개에 물건을 담아 주었다. 봉지를 쥔 손가락이 아팠지만 불과 몇 천 원으로 손가락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행복했다.        


그런데, 가게를 나와 100미터쯤 왔을 때 생수병을 담은 비닐봉지의 밑바닥이 터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길바닥에 나뒹구는 생수병과 비닐봉지 껍데기만 덜렁 움켜쥐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길바닥에 물건을 내버려 둔 채 급히 가게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그새 가게는 불이 꺼지고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나한테 엉터리 봉지를 쥐어 주고는 쏜살같이 퇴근해 버린 가게주인이 죽도록 야속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했다. 먼 기억 속의 건빵 봉지가 타슈켄트 길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컴컴한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물건들을 옮길 전략을 세워야 했다. 전략 수립에 있어 가장 큰 고려사항은 남은 봉지도 분명 우유나 생수병을 여러 개 담으면 바닥이 터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때 우유와 생수를 가장 안전하게 담을 수 있는 도구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나의 위장이었다. 헛구역질을 참으며 우유 한 팩과 생수 한 병을 들이켰다. 큼지막한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 논(non)은 잘게 찢고 과자는 봉지 채 부스러뜨려 부피를 줄였다. 두루마리 휴지는 망가진 비닐봉지를 길게 꼬아 허리춤에 매달았다. 무사히 집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온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생수와 고지방 우유를 뱃가죽이 터지게 들이켠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사소한 것에 대한 지나친 의무감이나 욕심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건빵 봉지와 타슈켄트의 생수병이 생각난다. 버리면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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