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쭉한 나무 의자 너머로 한쪽 다리를 집어넣는 순간 계좌이체 없이는 빠져나올 수 없는 그곳, 카드와 페이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단호히 거부하고 민족의 오랜 전통을 보전하는 곳
잡아 놓은 고기에겐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세상의 섭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곳, 한번 고객으로 포섭된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관심을 배제함으로써 고객의 자율과 자조 정신을 앙양시켜 주는 곳
풍성하게 쌓아 놓은 음식 더미를 눈앞에 두고 구십 노인의 이빨같이 고기점이 듬성듬성한 순대 접시를 받아 드는 그곳, 단백질 과다 섭취로 인한 건강 상의 폐해를 사전에 차단하는 곳
좁혀 앉으라는 주인의 지시를 거부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천하의 개망나니가 되는 곳, 주인에 대한 순종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미덕을 규율로 삼는 곳
책에서만 접하던 물질만능 주의와 배금주의의 실체를 싱싱한 날것 그대로 목도할 수 있는 곳,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에 대한 귀중한 체험 교육의 현장이 되는 곳
마이산 석탑처럼 뾰족하게 쌓은 나물 더미와 들기름이 반짝이는 김밥 위로 백팔번뇌 세상 먼지가 소복이 내려앉는 그곳, 티끌조차 음식으로 재활용되는 친환경 생태계가 살아 있는 곳
식용유 위의 빈대떡이 쇼트트랙 코너링처럼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그곳, 기름에 뽀글거리는 멍빈 팬케익을 바라보며 멍 때릴 수 있는 곳
자리에 앉자마자 얼른 일어나 주기를 바라는 주인장의 눈초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곳, 혹독한 감시와 통제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멘털과 스킬을 습득하는 곳
혹시나 하면 패자가 되고, 안 가봐도 뻔하다면 승자가 된다. 며칠 전 나는 또 패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