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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씻어간 반전 효과

by 슈르빠

우리나라 근대 소설 중에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나 김동인의 《붉은 산》,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과 《운수 좋은 날》, 김유정의 《동백꽃》 등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전개로 극적인 반전을 노리는 소설이 많다. 그런데, 근대 소설은 아니지만 황순원의 《소나기》도 그중 하나라는 걸 눈치챈 독자는 많지 않다. '자기가 죽거든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는 소녀의 말을 마지막에 배치한 데서 반전을 노리는 작가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진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소나기》를 처음 접했을 때 나의 기억은 소름 끼치는 쪽팔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소녀가 '이 바보!' 하면서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질 때부터 모골이 송연해지기 시작해서 소년이 며칠째 나타나지 않는 소녀를 생각하며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소녀의 흉내를 내는 장면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녀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챈 소년 스스로도 극악의 쪽팔림에 코피까지 흘렸고 그걸 읽는 나도 책장을 덮고 싶었다.


이게 무슨 조개냐는 소녀의 질문에 소년은 비단조개라고 대답한다. 이 말에 이은 소녀의 리액션은 과거 우리나라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전화벨이 울리면 그냥 받으면 되는데도 굳이 '아니, 전화 아니야!'라고 한 마디 내뱉고 나서야 수화기를 들던 전통의 한국영화처럼 소녀는 "이름도 참 곱다"는 한 마디를 보탰다.


사춘기를 넘어 쪽팔림에 덜 민감해지고, 입시에 매인 학생이 아니라 자연인 독자로 신분이 바뀐 후 다시 읽어본 《소나기》에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반전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독자들은 이미 마지막 반전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서사에 마음을 빼앗겨 더 이상 남겨둘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열대지방 스콜 같은 소나기가 잦아졌다. 소나기를 맞을 소년과 소녀는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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