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물건 배달하시는 분이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더니 내가 누르는 버튼의 층수를 보고서는 그때서야 자기가 갈 층의 버튼을 눌렀다. 자신이 가는 층수에 상관없이 나에게 우선권을 주려했던 것 같다.
메마르고 건조한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배려하고 살겠나 싶지만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면 군데군데 소소한 배려가 숨어 있다.
닭다리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어머니에서부터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라는 등산객,
앞에 빈자리를 두고 경로석으로 가시는 어르신,
갈길 바쁜 고객을 위해 급하게 순대를 써는 가게 아주머니,
출석부만 바라보며 출석을 부르는 교수님,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행객 앞 멀찍이서부터 길을 비켜주는 학생들에게서
숨은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조건 없는 배려를 마주할 때마다 자신을 돌아본다.
기회가 없었다는 핑계로 인색함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억울한 것에만 민감해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잡초를 들판에서 채소밭으로 옮겨 심어 준 신의 배려를 입고 살면서 너무 내 힘든 것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