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거 주면 착한 사람이라며, 먹는 거에 눈이 돌았던 그 시절 이야기
일이 바쁘면 비행기에서 끼니를 거르는 건 비일비재해서 우린,
아니 나는 밥을 언제 먹을 수 있을지를 몰라서 밥때가 되면 전투적으로 먹었다.
비행기에 그날에 승무원 수에 맞게 승무원용의 밥, 크루밀이 실리는데 크루밀 대개 기름지기도 하고 맛이 없다.
그런데도 그 당시 나는 선배님이 안 먹는다고 하면 진짜 안 드시냐고
정말 3번은 물어보고 선배님 밥까지 해서 두 개씩 먹었다.
(오랜만에 사진 보니깐 맛있어 보이네요, 그 당시 뿌듯해서 찍어놓은 건가 봐요.)
이렇게는 먹어야지 일 끝나고 호텔에 도착해서까지 배고프지가 않았고 또 그래야 잠에 잘 들 수가 있었다.
그렇게 아침이 되면 호텔에서는 조식 한 끼 무료제공이라 또 조식을 잔뜩 먹어야 했다.
오후까지는 버틸 수 있어서 조식 때도, 오믈렛, 쌀국수, 해쉬브라운 그리고 소시지를 시작으로
구석에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반찬들까지 하나하나 탐험하며 구석구석 부지런히 2시간을 배에 욱여넣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먹는 거에 참 진심이었다. 진심이라는 말은 꽤나 좋은 표현이고 먹는 거에 눈이 돌았다.
비행기에서 선배님 크루밀까지 먹어치워 놓고 체류지에 가면 뭘 먹을지만 생각하고 다니던 비행 한 지 한 3~4년 차에는 거의 그랬다.
그날 비행 가는 새로운 크루들을 만나면 눈은 돌아서 해맑게 " 다들 다낭 가면 뭐 드십니까" 라며 인사를 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 다낭이 나오면 먹을 것들을 시간순서대로 메모장에 나열했고 그대로 쭉 먹고 호텔에 귀가했다.
아침엔 조식 먹고, 점심에 유명한 곱창 매운 국수에, 간식으로 반미, 저녁에는 해변가에 맛집 햄버거,
이렇게 먹고 돌아오면 하루가 뿌듯하고 보람찼다.
그러다 보니 먹는 거에 집착이 돼버렸다. 힘들게 일한 나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예상대로겠지만 살이 슬슬 쪘다. 키 163에 60킬로를 훌쩍 넘었다. 입사 후부터 줄곧 해왔던 요가는 턱도 없었다.
일도 물론 편해져도 맞겠지만 먹는 걸 너무 먹어댔다.
그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모욕을 듣고 다녔다.
" 야, 너희 항공사는 유니폼 안 맞으면 권고사직 안 당하냐, 너 잘리는 거 아니야? 77 유니폼이 있냐?"
"하 안그래도 한 여름에도 카디건 입고 다녀, 지금 비행기 너무 더워죽겠는데
안에 셔츠에 단추가 안 잠겨서 카디건으로 가리고 다녀, 그래서 카디건을 아직도 나 혼자 못 벗고 있어.
그럼 후배들이 그래, 선배님은 안 더우십니까 맨날 물어봐
나도 참 카디건 벗고 싶다니깐. 후 "
PS. 그 시절 카디건만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네요.
지금은 열심히 운동해서 괜찮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음식이 주는 힘은 참 따뜻하고 작지만 스스로를 아껴주는 방법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추석연휴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고 가족들과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