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톺아보기

by 별빛단상

가까운 친구가 친구들의 카톡 모임방에 고향주변의 전원주택사진을 링크가 걸린 유튜브 사진으로 보내왔다.

단체 카톡방 이긴 하지만 다분히 나를 의식하여 의도적으로 보낸 게 자명하다.

아침 운동중이라 바로 답을 하지 않으니, 이름까지 적어 다시 한 번 답장까지를 촉구 하여 오다.

“검토하여 보고 답하라!”


은퇴로 인해 고정수입이 없어진 후 삶의 전반적인 조정이 필요해졌다.

우선 지출을 줄이는 것과 세 번째 정착을 위한 주거지 안착에, 막내의 독립선언으로 인한 공간을 줄여야 할 필요가 생겨난 것이다.

꿈과 이상의 유토피아가 아닐지라도 노후를 위한 둘만의 공간은 필요한 것 이니까

그 와중에 친구가 고향주변의 전원마을을 권해온 것이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은 토끼가 굴을 세 개를 가지고 있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뜻으로, 미래의 재난에 대비 하여 일이 발생하기 전에 몇 가지 방비책을 준비한다면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의 어원이다.

결국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사전준비가, 능히 위기를 극복하는 요청된 산물이라는

우회적 실천이 나의 세번째 굴을 찾아야 한다는 명제를 중첩한다.


친구들과의 모임인 인터넷 카페의 운영을 접었다.

갈수록 시들하여지는 참여의식 보다는 단 한명이라도 찾는 이가 있으면 그것을 지켜나가겠다는 나의 의지를 접은 것이다.

이제 또 다른 도전과 새로운 일에 전력투구 하고져 하는 마음 다지기에 대한 의지표현이다.

카페는 폐지 공지 기간이 지나며 자연 폐쇄절차를 끝냈다.


산비탈에서 보면, 보이는 것이 사시(斜視)적 으로 보는 것처럼 삐딱한 편견도 존재한다. 한번 비틀어 꼬아보는 시선이 관념의 차이를 이른다.

한자의 산의 허리를 이르는 상(峠)의 이미지가 비탈져 보이는 허상일 뿐 실상은 선위에 서 있는 곧은

실선이다.


국민 학교 저학년 시절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던, 슈바이쩌 박사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화에서

그가 친구와 뒤엉키는 싸움 끝에 친구의 몸에 걸터앉았고, 밑에 깔려있던 그의 친구가

“나도 일주일에 두 번씩 고기를 먹으면 너한테 안 질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슈바이쩌 박사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적 나는 그 글에서 ‘일주일에 고기를 두 번 정도 먹으면 힘이 생겨나는 구나’하는 생각을 유추 하였다.


“발 뿌리에 돌멩이가 차여, 돌멩이를 캐어 내려 곡괭이질을 시작 하고 보니 집체만한

바위 돌 이었다“

보라는 달은 아니 보고,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 끝을 바라보듯

본질을 뒤집으면 이면이 보인다는 단순한 섭리를 깨달은 것 이었을까?

‘아니! 단순히 나는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가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막다른 길에서도 다른 길도 있을 수 있고,

무슨 일이던지 열심히 노력하면 잘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과,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Pygmalion effect)는 나의 신념은, 숙고하고 결정하는 덕분에 긍정적 자아를 성찰하지

않았나 싶다.


비꼬아 틀어보는 위험천만한 발상도, 결국은 본인이 의도한대로 보이는 시각차이라는 것이다.

정사각형과 마름모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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