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虎鵲圖)를 꿈꾸다.

by 별빛단상

집에 가면 손주들의 재롱이나 보고 있을 사람들이, 무관심한 시선을 주고받으며 책상에 두 명씩 앉아

익숙하지 않은 붓을 쥐고 그리는 선들은 삐뚤삐뚤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

반복하여 그리는 선이 때로는 직선이 되고 때로는 원형이 되기도 한다.

“역입을 하여 중봉을 유지 하세요!”

“기본이 탄탄하여야 글씨에 힘이 들어가고 모양이 이쁩니다.”


배움은 더디고 가는 길은 아직 요원하나 열기는 폭염을 녹인다.

세상에 거져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으랴!


토요일 병원을 들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별다른 일정이 없어, 그간에 배운 복습을 겸해 먹물을 준비하고

붓 발을 펼쳐 붓을 드니, 아내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다가앉는다.

예전에 서예교실에서 서예를 배운 적이 있어 붓에 대한 적응력은 빠를 것 같아,

배운 대로 연필로 민화의 밑그림을 그리게 하고 준비 작업을 끝내니, 거실이 금방 서예 교실 같은 공간으로 변하였다.

“밑그림 작업이 끝나면 색칠을 시작하면 되네!”

호랑이와 까치 그림인 “호작도(虎鵲圖)”가 묘작(猫鵲)이 될지 호작(虎鵲)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저녁식사는 그림이 정리되어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가령,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음식의 메뉴를 보면, 나는 선뜻 주문을 할 수 없어 주춤 거리며 망설인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보다는, 적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질감을 쉬이 받아드려지지 않는 것이

새로운 호기심 보다 더 크게 자리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내는 새로운 것에 대한 망설임이 없다. 목적이외의 것에 개의치 않는 성격 탓으로, 싫으면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한입 베어 먹고 물리거나 아예 맞지 않으면 뱉어버리면 그만이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잘 하지 못한다.

싫은 것은 처음부터 아예 싫은 것이고, 좋은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세월이라는 나이를 먹어 가며, 한번쯤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본다.

결코 사려 깊은 배려에서라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여 보고, 무엇인가를 놓치는 실수를 제거하고자 함이다.

체면 때문에 눈치를 보며 허세를 부리는 일 따위는 행하지 않겠다는, 가면을 쓰고 위선을 내세우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돌아보면 벌써 나이와 환경 탓만을 하고 앉아 있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 스스로의 한계를 구속 시켜버리는

처사를 용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도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고유 영역이 있으려니까!

어찌되었든 실체는 인정하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희망을 버린 사람은 삶을 팽개쳐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하얗게 망초 꽃으로 덮은 언덕!

지평선이 보이는 망망대해의 끝단에서 다가오는 작은 선단에 싣고 있는 것이

일곱 가지 색깔 만선의 꿈이 아니면 어떠한가!


아직은 내어 딛는 진행형으로써 나는 희망을 그려 나간다.

희망은, 각자 그것을 원하는 사람의 몫이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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