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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May 31. 2023

바퀴벌레에게 이름을 붙이면 생기는 일

파이와 함께한 일주일  

벌레를 무서워한다.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의 벌레 혐오증은 조금 유별난 수준인데 개미나 모기 같은 최저 난이도의 곤충도 잡지 못할 정도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크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아아, 벌레를 무서워한다는 점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나라는 인간의 초기 세팅값을 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는 가장 먼저 벌레에 대한 혐오도 레버를 반대편으로 확 넘겨버릴 것이다. 강아지와 고양이, 소와 돼지, 뱀과 개구리까지 어지간한 생명체는 다 사랑하는 내가 벌레까지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평화로웠을까.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자 운영하는 작은 공간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하나 둘 찾아온다. 1층 출입문을 활짝 열어둔 탓이다. 틱- 틱- 소리를 내며 전등에 몸을 부딪히는 거대한 날벌레는 그중 양반에 속한다. 이런 친구들은 반복적인 소리로 공포감을 조성하지만 쉽사리 밑으로 내려오지 않으며 하루 정도 내버려 두면 흔적을 감추기 마련이니까. (어떻게 됐는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다음 손님은 옆집에서 탈출한 타란튤라가 아닌가 싶게 굵직하고 부숭한 존재감을 뽐내는 거미다. 그래, 아침 거미는 손님이랬지- 물론 지금은 밤이지만. 거미는.. 곤충이 아니야~ 거미는, 착한 동물이야. 같이 살면 좋을 거야. 나 대신 벌레들을 잡아주잖아. 그렇게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고 '핌'이라는 이름도 지어준다. 바닥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열심히 기어가던 핌은 다행히(?) 다음 날 이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워낙 공간이 협소한지라 집을 지을만한 곳도 없을 텐데... 대체 어디로 가셨을까? 거미줄 칠만한 모서리 여기저기를 들여다보지만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밤새 출입문은 잠겨있었고, 그 큰 몸집이 빠져나갈만한 다른 길은 없는데...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핌, 부디 어딘가에서 굶지 말고 잘 살고 있기를.


어느 날의 퇴근 30분 전, 곁눈 아래로 검은 물체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오소소 돋는 소름과 함께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 해충의 최종보스, 악명 높은 바퀴벌레님이. 화들짝 놀라며 요란을 떠는 통에 저도 놀랐는지 싱크대 아래로 스스슥 자취를 감춘다. 아,, 아니야, 바퀴벌레가 아닐 거야. 그냥 딱정벌레나, 하늘소,,,? 귀뚜라미,,? 아무튼,,, 검고 큼직하고 기어 다니는 어떤 다른 벌레일 거야.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뭐라고 이름을 붙일지 고민한다. 그래 파이, 너는 파이다. 제법 귀여운 이름을 지어주고 허겁지겁 조기퇴근을 하기로 결정한다. 손을 덜덜 떨며 가방을 챙기고, 그가 들어간 싱크대 옆은 차마 지나치지 못하겠어 계산대를 힘겹게 넘어 우당탕탕 퇴근. 이 밤은 너에게 양보한다, 파이.




파이와 나 사이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나는 낮을 지배하고, 그는 밤을 지배한다. 나에 대한 배려인지 며칠 동안 모습을 내비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가끔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나에게 눈치를 주듯 싱크대 아래에서 소심하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어, 미안미안, 너무 내가 오래 있었지. 너도 일 봐야 하는데. 또다시 우당탕탕 퇴근.


출근 시간에는 우렁차게 파이를 불렀다. 혹시나 해가 중천에 뜬 지도 모르고 내 푹신한 의자에 누워 단잠을 즐기고 있을까 봐. 파이~ 나 왔다~ 얼른 들어가~~~!! 다행히 하루 일과가 뚜렷한 파이는 낮 시간에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가끔 지원군이 와서 싱크대 아래를 이것저것으로 들쑤시고 위협하기도 하는데, 파이는 남들이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 떠났나..?' 하는 섭섭한 마음이 들라치면 혼자가 된 어둑한 시간에 슬쩍,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 아직 여기 있어, 걱정하지 마'


그렇게 일주일쯤 우리의 공존이 이어졌다. 어느새 스릴 넘치는 출퇴근에 적응을 해갔을지도 모르겠다. 오픈 시간마다 '오늘은 파이를 볼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생각에 심장이 뛴다면 그건 공포일까 설렘일까. 파이가 자그마한 틈을 통해 자유를 찾아 떠나기를 애타게 바라는 만큼, 공간 안에 딱히 먹을 게 없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해본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우리의 공존은 예상치 못하게 끝났다. 어김없이 두근거리며 출입문을 연 내 눈앞에 들어온 것은 배를 까고 누워있는 파이의.. 차가운 주검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생각해 본다. 나는,, 파이가 자유를 찾기를 바랐지 죽기를 바란 적은 없는데. 그러고 보니 어제 날파리를 퇴치한다고 스프레이를 여기저기 뿌렸던 게 기억난다. 살짝 묻은 손이 따끔거릴 만큼 독한 퇴치제, 그렇지만 파이가 다니는 바닥에 뿌린 적은 없었는데. 아마 작은 방울방울들이 바닥에 떨어졌던 걸까..?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되어 밖에 나와 부지런히 먹을 걸 찾아다니던 파이는.. 그만.. 그렇게...


뜻하지 않게 해충박멸에 성공해 버렸다.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아도 되는 나는 오늘 조금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후련함이나 해방감으로는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조금 묘한... 어쩌면 나는, 애도를 하는 걸까? 바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죽고 난 모습을 보니 파이는 확실히 바퀴였다. 그것도 제법 큰.


고백하자면 난 아직도 파이의 주검을 치우지 못했다. 허망하게 떠나버린 그를 기리기 위한... 뭐 그런 것은 아니고, 시체도 치우지 못할 정도의 나의 벌레혐오증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지원군이 올 때까지 파이를 저렇게 방치해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취를 할 때도 벌레가 나오면 집을 양보하고 도망쳐 나오던 나니까... 어쩔 수 없다. 너의 마지막을 직접 보내주지 못해 미안해, 파이. 이렇게 비겁하고 나약한 나라서.


가까운 누군가 그랬다. 사람은 무서워하는 것들에 이름을 붙여준다고. 그래야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어 비로소 두렵지 않게 되니까. 핌과 파이라는 친근한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같이 말을 걸고, 그들로부터 도망치는 게 아닌 양보한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정말로 조금은 그들에게 애틋함을 느끼게 되어버렸나 보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이렇게 위험하다.  


오늘부터 내가 꿈꾸는 다음 단계의 어른은 그런 거다. 벌레도 사람과 동물만큼 사랑할 수 있어서, 인간의 공간에 잘못 비집고 들어온 그들을 따뜻한 손 위에 올려 바깥세상으로 살포시 내보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파이, 그동안 즐겁지.. 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내게 묘한 울림을 줘서 고맙고.. 지내는 동안 부스러기 하나 못 줘서 미안하고... 다음 생애는 부디 더 풍족하고 행복하길 바랄게.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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